기인(奇人) 이범(李範)의 설화

영광군 대마면 복평리는 광해군 때에 낙향한 호조참판(戶曹參判) 이규빈(李奎賓 1549-1623)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섬암(蟾岩)마을은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이 많은 마을로 이 마을 위쪽에 방축(方丑)이란 마을이 있고 방축마을 아래에는 방축제가 있는데 저수지 둑 옆에 공배석(拱北石)이라고 쓰여있는 높이 2.4m 1m가량의 입석이 서 있다. 이 방축제(方丑提)와 공배석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온다.

조선조 순조 때 방축마을에는 이범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골격이 장대하고 용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재주가 비범하여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인근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어느 날 그의 부친이 사랑에서 낮잠을 자는데 갑자기 해(태양)가 입으로 들어와 목구멍으로 삼켜버리는 꿈을 꾸었다. 이는 분명히 훌륭한 자식을 낳을 태몽이라고 여기고 안방으로 들어가 부인에게 꿈을 얘기하고 동침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대낮에 이 무슨 해괴한 짓이에요.”하고 막무가내로 거절을 하였다. 흥분을 억제하지 못한 그는 몸종을 불러 동침을 하였는데 몸종은 그날부터 태기가 있어 몸종에게 허리를 졸라매게 하고 부인은 잉태한 것처럼 무명 배를 두둑이 감아 열 달이 되었다. 몸종이 아들을 낳자 아기는 이제 막 출산한 아기가 정상적인 아기 보다도 골격이 클 뿐 아니라 얼굴이 관옥같이 훤칠하여 부인이 낳은 아기로 위장하여 길렀다.

예로부터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면 먼 지방에 있는 선비들은 한양까지 가려면 한 달 이상이 걸리므로 마을에서 일정한 장소를 정하여 그곳에서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을 향해 북향사배(北向四拜)하고 나라의 안위를 기원하였는데 이 마을에서는 선돌(立石)이 서 있는 곳에서 이를 행하였다. 이범은 11세 때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이 선돌에 공배석(拱北石)이라고 손수 글씨를 써서 새기고 북향사배(北向四拜)를 하며 앞으로 열심히 무예를 닦고 학문을 익혀서 나라에 큰일을 하며 충성을 다하겠나이다.”하고 다짐 한 뒤 더욱 열심히 무예를 닦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러나 어떤 비밀도 언젠가는 들통나고 마는 것, 이범이 성년이 되어 과거시험에 나서려는 시기에 몸종의 몸에서 태어난 서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범은 비통한 실의에 빠지고 만다. 당시는 안동김씨가 세도를 부리던 때로 서자는 과거시험도 치를 수 없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던 시대였다. 제아무리 비범한 재주를 지닌 사람일지라도 천대를 받으며 능력을 펼칠 수 없었던 어두운 시대였다. 이러한 처지에 직면한 이범은 세상을 원망하며 양반들의 일에 방해를 일삼아 근동에서 망나니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아랫마을 섬암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른 사람들이 많음을 시기한 그는 혼자 힘으로 방축과 섬암 사이의 언구재 능선을 잘라 방축제의 물을 넘기는 수로를 만들어 버려 풍수설에 의한 섬암마을의 주맥(主脈)을 끊어 마을 터를 못 쓰게 만들고 더는 인물도 못 나오게 하는 심술을 부렸다. 이와 같은 심술은 그치지 않았으나 근동 마을 사람들은 그가 힘이 장사인 데다가 인물이 비범한지라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 했다.

이러한 소문은 나라에까지 알려져 이 사실을 조사하기 위한 관원이 내려왔다. 조사관이 내려올 것을 사전에 알아차린 이범은 관원이 오는 길목인 <이래잔등>에 하마비를 세우고 그곳에서 자신의 집까지 화문석을 깔고 영접하여 관원을 놀라게 하였다. 또 관원이 자기 집에 머무는 동안 매끼 마다 색다른 진수성찬으로 접대하니 관원이 그를 시험하기 위해 반상기를 모두 방축제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이리 할 것을 미리 짐작한 이범은 방죽 안에 미리 그물을 쳐 놓았다가 그릇을 건져내니 관원은 그 비범함에 놀랐다고 한다.

그 후 이범이 나라에 어떤 이로운 일을 하였는가는 전해진 바 없으나 근동 주민들은 이범이 걸출한 인물이며 서자로 자신의 포부를 펴지 못한 한이 많은 기인으로 아까운 인물이었다고 전해온다. 이는 꾸민 얘기가 아니라 그 시대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다.

이러한 설화는 이 마을에만 전해오는 것이 아니라 걸출한 서자가 태어난 마을에는 이런 얘기가 전해오기 마련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림동에 전해 내려오는 홍총각 얘기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그 대표적인 설화가 바로 장성의 홍길동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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