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내의 인권의 문제를 고민하다

국형진/영광군미래교육센터장
국형진/영광군미래교육센터장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라는 선생님의 존경심과 권위가 요즘시대에는 좀 다른 것 같다. 학생인권의 향상과 학부모의 갑질, 업무 과다와 잦은 전직은 선생님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퇴직을 고려하는 교원이 전체의 1/3에 육박한다는 설문결과는 선생님을 미래 희망으로 여기는 청소년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교육대학이나 사범대의 입학 성적이 떨어지며, 교대소멸이라는 어두운 신조어를 양산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학생 인권은 제대로 지켜지며, 선생님들의 인권은 보호되고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가 인권의 성장을 위한 충분한 숙의와 과정을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인권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프랑스는 1790년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시민들이 부르주아 계층에 집중된 권리를 시민에게 이양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220년동안 인권의 성장을 위한 사회적 투쟁과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군사 독재로 이어지는 근현대 역사 속에 인권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적용된 것은 50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급하게 인권 인식을 높이다보니 참 많은 과도기적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유사한 사안으로 병사 처우를 높이다보니 군 초급 간부들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초급 간부 지원자 감소, 장기 지원자 감소 등으로 군의 내부적 갈등을 촉발시킨 것은 일방의 인권 향상이 시도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학교 내에서도 2000년대부터 학생인권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고, 권리교육이 시행되면서 학교폭력 문제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사소한 문제도 인권적 문제로 접근하게 되면서 학생들간의 갈등으로 정리되기 보다는 법적 문제, 절차적 문제로 접근하게 되는 현상이 생긴 것은 학생 인권에 대해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교사의 인권이 서로 존중되는 인권문화가 발전된 것이 아니라, 학생인권의 일방적인 주장이 기존의 권위있고, 존경받던 교사상은 학생의 인권을 지켜줘야 하는 인권 지킴이의 역할이 추가되면서, 권위와 존경에서 책임과 의무가 강조되게 되고, 학교에서의 역할이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 생활지도를 해야 하는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는 사람인가? 인권 지킴이인가?

교사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을 보고 그냥 눈을 감아야 하는 교육환경이 된다면 더 이상 학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교사의 손발을 묶어 놓고, 학생에게 책망할수도, 지도할수도 없다면 누가 청소년들과 함께 할수 있을까?

학교내 모든 구성원들의 인권은 소중하다. 인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결국 권리의 이양과 공유가 답이며, 문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질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은 어디엔가 있을 답을 찾아 모두 헤메이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답을 찾을 것이다.

학생을 존중하는 교사, 교사를 존중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만드는 행복한 학교를 모두 꿈꾼다. 따라서 우리는 존중과 인권이라는 권리와 함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높여야만 인권이라는 꽃이 비로소 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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