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군민들의 역량강화와 지역사회의 성장을 돕기 위해 진행하는 영광 미래 리더스 아카데미가 영광신문 지면을 통해 찾아왔다. <편집자 주>

 

영광미래리더스아카데미 제주 다크투어편 (상)

다크 투어리즘은 재해 피해재적지, 전쟁철거지 등 인류의 죽음이나 슬픔을 대상으로 한 관광으로 블랙 투어리즘 뜨는 그리프 투어리즘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영광미래리더스 아카데미는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역사 답사를 추진하였으며, 참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를 통해 교훈을 얻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세계적으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캄보디아 킬링필드 유적지, 미국의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에 관련된 유적지가 있고, 그중에서 제주가 우선 답사지로 선정되어 7월 아카데미 회원들을 중심으로 답사를 진행하였다.

주요 일정으로는 제주 43기념관, 북촌 너븐숭이, 알뜨리비행장, 섯알오름, 진지동굴,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로 운영되었으며, 장소마다 갖고 있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알게되면서, 43제주 학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우리 영광의 이야기 또한 다시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43평화공원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제주 4.3 평화공원은 4.3 사건 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공원 안에는 제주 4.3 평화기념관, 위령제단, 위령탑, 봉안관 등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위령제단은 연중 4.3 희생자에 대해 참배를 진행하는 곳이며, 그들을 모시고 있는 위패봉안실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봉안관은 4.3유해발굴 사업 시기에 발굴된 유해를 봉안하는 장소로 현재 380기가 안치되어 있다. 각 명비원에는 희생자의 성명과 성별, 당시 연령 등을 기록해 두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는 총 6개의 특별 전시관이 있다. 1관에서는 주민들의 피신처로 활용되었다는 천연동굴을 주제로 한 역사관이 있으며, 2관에서는 해방과 좌절이라는 주제로 해방 후 3.1절 기념행사에서 사망한 6명의 민간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3관에서는 무장봉기와 분단 거부라는 주제로 194843일에 일어난 무장봉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4관에서는 학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5관과 6관에서는 진상 규명 운동으로 상처를 극복해내는 과정과 관람 후의 소감문이 걸려 있다.

이번 답사팀은 6개 관을 차례로 둘러보며 43 피해가족인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제주 43사건이 민중의 소요가 아닌 잘못된 권력과 정치, 국제적 이해관계속에서 발생한 민초들의 고통이 핵심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국가가 나서 그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피해자들에 대한 넋을 기리기 위한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투어 시작부터 제주 43사건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너븐숭이

북촌리는 조천면의 동쪽 끝에 자리 잡은 해변 마을이다. 국민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지만 서우봉과 접해 '해동'이라는 마을이 서쪽에, 또 산간 선흘리 방향으로 억수동이란 마을이 흩어져 있기도 했었다.

북촌리는 일제시대에는 항일운동가가 많았고 해방 후에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 조직이 활성화 됐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9478월 경찰관에 대한 폭행 사건과 19486월 우도 지서장 살해와 납치 사건이 북촌리 청년들에 의해 벌어지면서부터 늘 토벌대의 주목을 받았고, 43의 와중에는 많은 청년들이 토벌대의 횡포를 피해 피신하면서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자의반 타의반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19481216일에 첫 번째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민보단을 조직해 마을을 지키고 토벌대에 협조하던 24명의 주민들이 느닷없이 군인들에 끌려가 동복리 지경 '난시빌레'에서 집단 총살 당한 것이다. <구좌면-동복리-희생터-난시빌레 참조> 이 엄청난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1949117,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민간인학살이 북촌리에서 자행됐다.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가져온 북촌리 학살 사건이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한 동서 쪽 들과 밭에서 자행된 것이다. 이 날 북촌리의 마을에 있었던 불가항력의 남녀노소 400명 이상이 한 날 한 시에 희생되었다. 명절처럼 제사를 한날 한시에 지내는 북촌리에는 너븐숭이 애기무덤 등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많은 흔적들이 있다.

전체 일정에 함께한 김태식 선생은 너븐숭이의 학살자 발견터에서 너븐숭이의 이야기를 전하며 울먹이는 모습으로 답사 참가자들도 공감하는 시간이었으며, 뜻밖에 우리가 모른는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제주 43사건의 배경중 미국의 제주에 대한 인식이었는데, 태평양 전쟁 당시 제주도는 일본의 중요한 군사 거점지역으로 본토를 공격하는 미군을 유도하기 위해 많은 군사 시설이 지어졌으며 수만명의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의 항공기를 공격하고, 제주도 인근 바다에서도 미군의 군함이 피격 당하는 등 피해를 당하게 되면서 제주도와 일본을 동일시 하게 하는 사건들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았으며, 이를 통해 제주에서 발생한 민중 봉기를 과대인식하여 제주도민 전체에 대한 토벌로 확대하도록 한국군과 경찰을 이용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제주43사건에 대해 한국정부에 대한 책임과 함께 미국의 군사 결정권한 행사에 대한 직간접적인 증거들을 추가 확보하여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제주 43사건을 알리는데 공이 컸던 사람을 소개했는데, 모두가 입을 다물어야 했던 제주의 이야기를 소설로 출간하여 많은 고초를 겪었던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을 통해 큰 모멘텀이 시작되었고, 유명한 제주 올레길을 만들었던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이었던 서명숙씨는 전국민이 열광했던 올레길의 창시자로 제주 올레길 곳곳에 제주 43사건 유적지를 포함하여 제주를 걷는 국민들에게 43사건에 대한 인식을 자연스럽게 할수 있도록 한 큰 공이 있다고 하였고, 43 특별법을 만들고 지원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제주 도민들의 억울함을 풀수 있는 법적 근거와 지원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슬프고도 가슴 아린 이야기이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 문인, 행정, 정부의 노력을 망라한 제주 43을 알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영광에도 이런 노력이 민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일이며, 큰 계기를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형진 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