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고집(9)-햇빛이나 가리지 말아주시오-디오게네스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기원전 400~323년 무렵)는 흑해 연안의 항구 상업도시 시노페에서 환전상(換錢商)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주화(鑄貨-동전)를 위조하다가 들켜 쫓겨 다녔는데, 디오게네스 역시 아버지를 따라 가짜 돈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고향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 후 아테네로 망명하여서는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위조화폐를 만들어, ‘공인된 가치와 다른 가치를 창조했다고 한다.

아테네에 와 살면서 디오게네스는 당대의 기인(奇人)으로 소문 나기 시작했다. 그가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자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이때 디오게네스는 내 눈으로는 현자(賢者)를 찾기가 힘들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는 모름지기 사람이란 이성을 갖든지, 아니면 목매달 끈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디오게네스는 덕이란 모든 육체적 쾌락을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를 위해서는 결핍과 곤고(困苦), 모욕을 참아내는 강한 정신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여러 가지 기행으로 널리 알려진 디오게네스이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만남은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 여러 나라 대표가 코린트(=고린도)에 모여 알렉산드로스를 장군으로 삼고 페르시아를 정벌하기로 결정하자, 수많은 정치가들과 철인(哲人)들이 그를 방문하여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오직 디오게네스만 오지 않았다.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그를 찾아갔다마침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던 디오게네스를 보고, 알렉산드로스가 내가 알렉산드로스인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무엇이든지 들어주겠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물끄러미 왕을 바라보던 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저 쪽으로 좀 비켜주시오. 당신에게 가려 햇볕이 들지 않거든.” 그와 헤어져 돌아온 뒤, 디오게네스의 대꾸와 행색을 비웃는 부하들에게 대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생각은 너희와 다르다. 내가 만약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지배하고 정복하려고만 했던 제왕, 그와 정반대로 세상 것들을 무엇이든지 버리려고만 했던 철학자의 절묘한 만남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단순한 기인이 아니었다. 하루는 길거리에서 신전의 제사(祭司=사제)들이 헌금을 훔쳐가던 사나이를 붙잡아가는 것을 보았다. 디오게네스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저기 큰 도둑이 좀도둑을 잡아가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디오게네스는 전 생애를 통틀어 옷 한 벌, 한 개의 지팡이, 물을 떠먹기 위해 지니고 다니는 호박(琥珀, 누른빛을 띠고 윤이 나는 광물)으로 된 그릇, 두타대(頭陀袋-옷 등을 넣은 자루) 외에는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어린아이가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것을 보고(다른 설에는 개가 물을 마시는 장면을 보고) 물그릇마저 내동댕이치고 말았다고 한다. 인간이 아무런 소유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왔던 디오게네스이지만, 아직 자신이 철저하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다.

디오게네스의 마지막 모습도 평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9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일부러 숨을 쉬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혹은 익지 않은 고기를 먹다가 식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무욕(無慾)과 자족(自足), 무치(無恥) 개의 삶과 닮은생활을 목표로 삼았던 생애 때문인지 몰라도, 그의 무덤엔 개집(=항아리)에 들어가 있는 강아지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고 한다.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최근 저서고집불통 철학자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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