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대통령이 만찬회 장소에서 새로운 이념 전쟁을 선포했다. 나이 지긋한 사람에겐 전쟁 이후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사상 대립이지만 신세대에겐 다른 느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산과 민주의 개념 출발은 어디일까. 단독 가구의 생활에서 만들어지는 구성은 아니기에 농경사회와 출발점은 같았을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균쇠에서도 인류 비극의 출발점을 농경사회 출발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인류의 단체 구성은 대부분 공산(共産)’으로 출발한다. 공산이라는 말이 북한을 떠오르게 만든다면 자극적이지만 다른 말로 쓰면 공동생산이라는 의미이다. 작은 가구가 모여 살면서 같이 사냥하고 농사를 지으며 누렸던 공동생활의 방법이 바로 공산이라는 단어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가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하나님 사업을 했고, 박중빈 대종사는 백수 정관평에서 공동생활로 기반을 다지며 대각의 밝음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두레라는 미풍으로 남았고, 애경사의 축조금이라는 형식으로도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국가 규모의 통치 영역으로 넘어가면 문제는 달라진다. 세계를 양분했던 민주와 사회주의의 양상은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 이제 북한과 중국이 근근이 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공산 방식보다는 개인 자본 방식이 현대사회엔 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중국 역시 견디지 못하고 백묘흑묘론이라는 자본의 묘수를 던지며 오늘의 경제 기반을 다질 수밖에 없었다. 덧붙이면 대한민국이라는 최단기간에 발전을 이룬 민주국가에서 사회주의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굳이 추정하자면 일본을 선망하는 10% 정도 국민에 맞먹는 숫자는 아직 잔존하겠지만, 극소수의 판단능력부재증 환자일 뿐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미 빛바랜, 이념이라는 갈라치기 굴레를 다시 국민에게 덮어씌우고 있는 세력이다. 집토끼라도 지키려는 보수의 정략이라면 수가 너무 얕다. 결국, 던져지는 무기가 해묵은 이념 분쟁이라면 이미 정리가 되고 가닥이 잡힌 지 오래다. 사회주의가 대한민국의 주류에서 밀려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이념 타령인지 오히려 신기하다. 이념과 분열 그리고 진영논리는 다른 글자에 같은 뜻이다.

최근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졌던 독립운동가들의 흉상 5기가 철거될 것이라는 내용의 뉴스가 미디어를 달궜다. 특히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이력을 문제 삼으며 북한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육사 교정에 존치하는 건 부적합하다고 했다. 일견 맞는 말 같지만, 이는 역사를 모르거나 에둘러 무시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념이라는 무기를 날리기 위해선 항상 방어가 우선으로 마련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건 정략의 기본이다. 공산당 출신의 정치인 대표는 바로 박정희이다. 남로당 활동으로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그가 같은 만주 군관학교 출신 백선엽으로 도움으로 살아남아 행정장교로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엄연히 남아 전한다. 또한, 홍 장군은 1943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해방 이후의 이념 분쟁과는 아무런 연관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시 일제와의 전쟁은 소련과 미국, 중국, 그리고 우리 임시정부까지 한편으로 치렀던 게 사실이다. 소련에서의 항일은 소련과, 중국에서의 항일은 중국과 연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무시하면 독립운동이라는 큰 외곽선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더욱 큰 우려는 이 자리에 백선엽이라는 일본 장교 출신 흉상을 건립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다. 확정이 아닌 관계로 그럴 리는 없다는 게 일반적 생각이지만 어쩌면 살짝 띄워본 풍선일지도 모른다는 일부 여론도 있다. 그의 친일 기록을 최근 살며시 삭제했기 때문에 갖는 합리적 의심일 것이다. 나라를 판 매국은 인정하되 이념과 사상의 다름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더욱 위험하다. 이념의 분쟁은 이미 사회주의의 완벽한 패배로 결판이 났지만 친 일본을 넘어 선망과 추앙을 담은 신 매국 주의는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사회주의와 공산이라는 체제를 이미 버렸다. 참고로 홍범도 장군은 박정희가 훈장을 추서했고, 홍범도 잠수함은 박근혜가 진수했다. 버리려면 같이 내다 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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