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군 낙월면은 상 낙월도와 하 낙월도 두 섬이 마치 초승달 모양으로 이어져 있어서 얻은 이름이다. 이 섬에 가려면 염산 향화도 항에서 낙월도 행 여객선을 타야 하는데 직항하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간다. 그 까닭은 밀물 때면 물에 잠기고 썰물 때만 형체를 드러내는 1에 이르는 거대한 풀등 때문이다. 여객선이 풀등에 걸려 좌초할까 봐 두려워서 우회하는 것이다. 이 풀등은 새우들의 산란장으로 낙월도가 새우젓의 산지가 된 것도 이 풀등으로 인해서다.

낙월도(落月島)의 옛 이름은 진다리(진달이)섬 혹은 진월도(珍月島)이었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진월도로 표시되어 있고, 고산자 김정호(1804~1866)가 편찬한 대동지지에는 낙월도로 표기돼 있다. 낙월도가 진다리섬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백제가 폐망할 때 백제 왕족들이 배를 타고 피난을 가다 달이 지자 항로를 잃고 이 섬에 정착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또 일설에는 두 섬이 연결되어있는 모습이 긴 다리처럼 보여 긴 다리가 전라도 사투리로 진 다리로 변해 진다리섬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그런데 상 낙월도에는 비바람에 시달리고 파도에 씻긴 바위 두 개가 서 있는데 하나는 바닷가언덕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슬픔에 젖은 듯 앉아있고 하나는 언덕 아래에서 언덕 위에 앉아있는 바위를 바라보며 서 있다. 사람들은 이 두 바위를 쌍복바우라고 부르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마을에는 사랑을 맹세한 두 쌍의 남녀가 있었다. 이제 가을걷이가 끝나면 혼례식을 올리고 부부가 될 텐데 미처 가을걷이가 다 끝나기 전에 왜적이 쳐들어 와 나라에서 병사를 모병하니 젊은 두 총각은 징집에 응하여 김총각은 육군, 배총각은 수군으로 입영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두 쌍의 남녀는 나라의 부름으로 코앞의 혼례를 앞두고 생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육남씨! 사랑해요.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하느님께 날마다 빌께요.”

전순이! 사랑해. 꼭 살아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

선돌씨! 날더러 어찌하라고 혼자만 가뿐당가 시방? 꼭 살아서 돌아와야 헌당께~ 약속혀요. 얼렁 손꾸락 걸장랑께라우~”

그려, 알았당께! 꼭 살아서 돌아올팅께 나 없는 참에 물녀는 딴 놈보고 헛눈질이나 말더라고~.”

두 쌍의 처녀와 총각이 혼례식을 올리고 부부가 될 날이 채 한 달도 못 남았는데 헤어져야만 하는 이별의 순간은 마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도 남았다. 처녀들의 애간장이 녹는 애처로움을 뒤로하고 전선을 향해 떠나는 육남이와 선돌이도 가슴이 쓰라리기는 마찬가지 이였다.

그 후 육남이는 며칠이 멀다 하고 소식을 전해주어 전순이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전순이는 소식이 올 때마다 목욕재계하고 하느님께 육남이가 몸 성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수군으로 입영한 선돌이는 몇 년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 아닌가. 물녀는 소식이 없는 선돌이를 원망하며 갯가 일에 지치다 보니 자연 치성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선돌이는 한번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육지로 올라오는 일이 거의 없어 소식을 전할래야 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물녀는 삼 년이 넘도록 한마디 소식이 없는 선돌이가 원망스럽고 간간이 소식을 전해 받는 전순이가 부럽기만 하였다.

난리가 평정되어 복무를 마친 병사들이 모두 돌아오고 육남이는 돌아와 전순이와 혼례를 치르고 신혼의 단꿈을 꾸는데 선돌이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물녀는 날마다 언덕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며 선돌이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어쩌랴! 한 참 후에야 선돌이의 전사통지서가 오는 게 아닌가. 전사통지서와 함께 그동안 선돌이가 물녀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를 전할 길이 없어 모아 둔 사랑의 편지 뭉치가 함께 돌아왔다. 물녀는 선돌이의 마음도 모르고 선돌이를 원망한 자신이 밉고 자기의 치성이 소홀하여 남편이 될 선돌이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그러다가 끝내 뒷산 해변의 절벽 위에 올라가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부모는 물녀의 시체를 인양하여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묻어주었다. 그런 뒤 하루는 꿈에 물녀가 나타나

아버지, 불효녀를 용서하소서! 지아비는 바다에 있는데 저는 어찌 산에 있을 수 있나요. 바다에서 영혼이나마 서로 만날 것이오니 저 무덤에서 관을 파서 관과 함께 그동안 혼숫감으로 준비해 둔 예물들을 바다에 띄워주소서.”

하고 애원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딸의 선몽대로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혼숫감으로 준비해 두었던 가위, 인두, 상자, 장롱 등을 함께 바다에 띄워주었다. 이때 띄워 보낸 관과 혼숫감들이 다시 바닷가로 떠밀려와 바닷가의 돌들로 변하고 언덕에 앉아있는 바위는 서럽게 우는 물녀의 혼백이 변한 것이며 조금 아래 서 있는 바위는 물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예비신랑 선돌이라고 전한다.

이 전설은 고기잡이 나가 풍랑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여인들의 안타깝고 서러운 사연이 전설로 꾸며져 전해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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