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단식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 기간 특정 목적을 위해 음식과 음료의 섭취를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행위이다.

생명유지의 수단인 곡기를 끊는 단식은 특정 사안의 관철이나 정치적 시위 등을 바라는 비폭력 저항 투쟁으로 사안에 대한 절박함이나 진정성 등을 세상에 어필하고 문제를 공론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몇 천 년 전부터 인간이 소화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오랜 경험에 따라 행하는 단식이 있었으며 종교적 계율에 따른 단식도 있었지만 가장 목표 지향적이며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식은 역시 정치적 단식이다.

이는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자신의 생명을 인질로 삼아 버리는 인질극이며, 자신의 주장을 공적으로 표출하거나 그에 대한 대중의 주의를 환기할 방법이 별로 없을 때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투쟁방식 중 하나이다.

세기의 단식 역사

인도의 독립과 종파의 화해를 위해 십 수차례 단식을 했던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인도의 인권운동가 이롬 샤르밀라는 16년간의 단식 투쟁으로 유명하다.

그는 2000년 인도 마니푸르주에서 군인들이 주민 10여명을 사살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정부군이 용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 및 고문하고, 사살할 수 있도록 한 법의 폐지를 요구하며 단식을 했다.

인도 법원은 이를 자살 시도로 규정하고 코에 튜브를 삽입해 단백질 등 영양분을 강제로 공급했는데 투쟁을 이어온 샤르밀라는 16년만인 20168월 꿀을 입안에 넣으며 상징적으로 단식을 끝냈다.

대규모 단식 투쟁도 있었다.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에서 있었던 단식 투쟁은 많은 사상자를 낳기도 했다.

당시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던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영국군의 철수를 주장하며 무력시위를 벌이자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는 대대적인 단속을 지시했고, 다수의 IRA 조직원들이 교도소에 갇혔다.

갇힌 죄수들은 자신들을 '테러리스트'가 아닌 '정치범'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단체로 단식 투쟁을 이어갔다.

교도소 측은 이들의 단식 투쟁을 저지하기 위해 묽은 죽을 담은 호스를 목구멍에 마구잡이로 꽂아 '강제급식'을 실시했으니 끝내 거절한 9명은 66일간의 옥중 단식 끝에 죽고 말았다.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토마스 애쉬도 더블린 감옥에서 단식 투쟁 도중 숨졌으며 한국에서도 손윤규, 김용성, 변형만 등 비전향 장기수들이 단식하다 숨을 거둔 사례가 있다.

정치인의 단식

1983, 전두환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을 당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무려 23일간 단식을 이어가다 위급상황 발생으로 중단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과 1990,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하며 13일간 단식을 함으로써 1991년 지방선거의 길을 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은 역사적인 단식이었다.

또한, 20185,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던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단식 9일 만에 드루킹 특검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민주화를 요구하며 50일간의 옥중 단식으로 결국 죽음에 이른 박관현 열사와 천성산 도룡용을 보호한다며 원효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100일간의 단식 투쟁을 했으나 보상금소송 논란을 빚었던 여중 지율의 이상한 단식도 있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23831일 당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갑자기 무능 폭력 정권에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 “퇴행적 집권과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막지 못한 책임이 큰데 그 책임을 조금이나마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단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있을 검찰 조사를 앞두고 벌인 '방탄 단식'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더 나아가 일반적이지 않은 단식방식으로 인해 진정한 그의 뜻과는 상관없이 출퇴근 단식이니 웰빙단식이니 하는 세간의 조롱을 받기까지 했다.

20191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조해주 중앙선관위원 임명에 반발하며 '좌파독재 및 초권력형 비리 규탄 릴레이 단식 계획'을 내놓고 오전조, 오후조를 짜서 5시간 반씩 밥을 안 먹는 방식으로 단식을 했는데 그냥 식사 간격이 5시간 반뿐이라는 빗발치는 조롱에 슬그머니 단식을 끝내버리는 촌극을 빚었다.

단식을 통해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선 목적의 합리성과 단식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생명을 인질로 단행한 단식이 가벼이 여김을 받거나 조롱거리가 된다면 결코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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