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고집(10) 교수직마저 거절하다-스피노자

흔히 알고 있듯이, 교수라는 직업에는 돈과 명예가 따른다. 물론 떼돈을 벌거나 대단한 권력을 손에 넣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하는데 지장 받지 않을 정도의 봉급과 어느 정도의 사회적 대우가 보장된다. 거기에 연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강연장, 저서)도 주어진다. 그 때문인지 유명한 철학자들도 이 직업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아예 이 자리를 거절한 철학자가 있었다니, 과연 그가 누구일까?

그는 바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스피노자(1632~1677. 네덜란드 출신)이다. 너무나 유명한 그의 긍정적 발언과는 반대로, 그 인생은 출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유태인 교회로부터 온갖 저주와 함께 추방령을 선고받는다. “천사들의 결의와 성인(聖人)의 판결에 따라, 스피노자를 저주하고 제명하여 추방한다. 어느 누구도 말이나 글로써 그와 교제하지 말 것이며, 그에게 호의(好意)를 보여서도 안 되며, 그가 저술한 책을 읽어서도 안 되느니라.”

이리하여 스피노자는 모든 명예와 부, 권위를 물리치면서 더 치열하게, 오로지 철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마침내 1675년 필생의 저작인윤리학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이 책은 생전에 출판하지 못하였다. 스무 살 때에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스승의 딸과 사랑하게 되었지만, 다른 구혼자의 값비싼 선물을 받은 그녀는 스피노자에게서 돌아서고 말았다. 이 충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한평생 결혼하지 않고 고독한 생애를 보냈다.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조차 그를 멀리하였으며, 어디를 가건 셋방조차 빌려주지 않았다. 다행히 동정심 많은 한 사람을 만나 지붕 밑 조그마한 다락방에서 살게 되었지만.

스피노자는 떳떳한 직장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생 시절 배워둔 안경렌즈 닦는 일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스피노자의 책들은 출간되는 즉시 금지도서 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도리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그렇게 되자 격려의 편지와 함께 생활비가 보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 대부분은 거절하였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다음에 나올 저서를 자기에게 바치는 조건으로 거액의 연금을 제의해왔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 역시 정중히 사양하였다. 마침내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 정교수 자리를 제안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스피노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자면, 저 자신의 철학 연구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의 연구하는 자유를 제한받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역시 거절한다.

물론 여기에는 안경렌즈 닦는 기술을 습득해 놓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생활이 풍족했던 것은 아니다. 너무나 어려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기부금을 주어 돕겠다고 하였지만, 스피노자는 생활에 꼭 필요한 정도만 받을 뿐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여기에도 조금 다른 설이 있는데, 그것은 친구와 지지자들이 제공하는 돈은 연금 형식이었기 때문에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심한 가난에는 시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야 어떻든, 렌즈 손질의 직업이 마침내 스피노자의 수명을 단축시키고야 말았다. 먼지투성이의 작업장이 그에게 폐병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박물관에 매장되어 있는 것처럼외롭고 고요한 사색의 삶은 45년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고독하게 마감되었다.(영광백수 출신, 광주교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최근 저서고집불통 철학자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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