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월에 알을 밴 참조기는 칠산바다를 지나 연평도 앞바다에서 알을 낳는다. 이 칠산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는 몸빛이 회색을 띤 황금색이며 입이 불그스레하고 몸통 가운데 있는 옆줄이 다른 조기에 견주어 굵고 선명하다. 동의보감약성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강하거나 약하지도 않고 평이하며 약간 단맛이 있고 전혀 독이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기 조리법은 다양하다. 누렇게 알을 밴 생 조기는 매운탕이 별미다. 조기의 알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여 여타 생선의 맛과 비교할 수 없다. 간을 하여 열흘 정도 말린 마른 조기는 불에 굽거나 조림 또는 조기찜이 밥맛을 돋운다. 조기를 오랫동안 저장해 둘 수 있도록 바짝 말린 것을 굴비라 한다. 여타 지역에서는 조기를 소금물에 담갔다 말리는 데 비해 영광굴비 맛의 비결은 소금에 절이는 방식과 말리는 기상조건에 있다. 염산면과 백수읍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천일염을 2년 정도 보관해서 간수가 완전히 빠진 천일염을 조기 아가미에 넣고 켜켜이 재는 것을섶간이라 하며 이 섶간 한 조기를 옹기에 30여 시간 절여두었다가 꺼내서 짚으로 엮어 덕장에서 약 3개월 정도 말린 것을 굴비라 한다. 법성포 굴비가 여타 지역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은 누렇게 알밴 칠산바다 조기의 어물로서의 우량성과 서해안의 바람과 고품질 천일염, 그리고 천년을 이어온 장인의 염장법에 있다. 법성포는 평균 기온이 10.5, 습도 75.5%, 초당 풍속 4.8m의 기상조건 그리고 칠산바다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인 하늬바람의 영향으로 건조 조건이 월등하다.

원래 법성포 굴비는 독에 보리를 넣고 굴비를 보리 속에 묻어 보관하였다. 보리는 가을에 심어 겨울을 지나 늦은 봄에 거두는 작물로 냉()한 곡식이다. 이 보관법은 냉동시설이 없던 옛날 굴비를 오래 보관하기 위한 냉장 보관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 찬 보리 속에 묻어놓은 굴비를 보리굴비라 하며 굴비의 으뜸으로 친다. 고추장 굴비는 굴비의 뼈를 모두 발라낸 뒤 고추장에 버무린 굴비로 별미이며 전통적으로 굴비를 조리하는 방법이다.

말린 조기를 굴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어원은 조기를 짚으로 엮어서 덕장에 매달아 말리면 마르는 동안 묶인 부분이 저절로 구부러들어 구부러진 고기라는 의미로 굴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지만 일설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회자 되기도 한다.

고려 16대 예종 때 이자겸은 그의 딸 순덕을 왕비로 들여 그 소생인 인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하였다. 그리고 인종에게는 이모가 되는 그의 3녀와 4녀를 시집보내 중복되는 인척 관계를 맺고 권세를 독차지하고 은근히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었다. 경원이씨인 이자겸은 이씨가 왕권을 잡는다는 십팔자도참설(十八子圖讖說)을 믿고 두 차례나 왕을 독살하려 했지만, 자신의 딸인 왕비가 인종을 도움으로써 실패했다.

그 뒤 최사전이 이자겸의 측근인 척준경을 꾀어 이자겸을 체포한 후 법성포 맞은편 지금의 영광 백수읍 한시랑 마을로 유배시켰다. 그는 유배지에서 조기를 먹게 되었고 마침내 칠산바다에서 잡아 소금에 절인 조기를 진상하며 비굴하게 자기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아부가 아니라는 의미로 비굴을 거꾸로 굴비(屈卑)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영광굴비는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되고 궁궐에서부터 영광굴비가 명물로 등장하여 각광(脚光)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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