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오랜 옛날부터 같은 관습과 환경에서 역사를 공유해온 무리를 보통 민족이란 말로 표현을 한다. 민족을 가장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중심으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언어는 수천 년을 지나도 기본 뿌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단어의 발음 정도는 변화가 있겠지만 어순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음식 또한 크게 바뀌지 않는 습성을 보인다. 살아가는 환경과 무관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개 식용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잠깐 해보고자 한다.

개가 가축이라는 범위에 자리를 잡고 음식의 대상이 되었던 나라는 중국과 우리를 중심으로, 비교적 비슷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동아시아 권역이다. 특히 중국은 오랜 과거부터 개 식용에 관한 의식 자체가 없었다. 우리 역시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일상식이었고 없어서 못 먹는 고급 육류식이었다. 단지 입에 맞지 않거나 개와 친해서 먹지 않는 사람은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현상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였던 것이다. 시대적인 조류를 빙자로 역사에 내재하는 문화를 거부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문화의 변화와 시류에 따르고 순응해 가는 것 또한 개인적 자유이다. 문화는 변하는 것이고 변화는 사람의 자유 의지에서 출발한다. 개를 식용으로 삼을지 말지는 오직 개인적 자유 의지에 따르는 것이지 규율로 묶어야 하는 법의 테두리는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 의식 없이 개를 식용으로 했던 기억이 불과 20~30년 전이고 보면, 고유의 음식 문화가 순식간에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고대에서 조선까지 모든 기록을 살펴봐도 좋은 음식이고 가축이었던 개가, 불과 몇십 년 만에 사람의 친구로 신분 상승했고 이젠 사람은 스스로 개의 아빠와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는 식구들에게 강아지 다음 서열로 밀렸다는 눈물 나는 농담도 만들어졌다. 물론 개인적으로 개를 싫어하진 않는다. 밖에 든든한 진돗개라도 한 마리(‘한 마리라는 표현이 송구스럽긴 하지만)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부담스러워 포기했다. 아무튼, 개는 이제 특별한 신분을 획득한 셈이다. 동물권이라는 명제를 들고 동물보호협회에서 나선 이상 옛날로의 신분 회귀는 없을 것이고 앞날 역시 밝기만 하다.

음식 역시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화 중 하나다. 인위적이거나 강제가 포함될 수 없는 부분이다. 문화는 스스로 흐르고 변화한다. 개 식용 문제 역시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이미 시내의 소위 보신탕집은 거의 소멸했고 찾는 사람도 그만큼 줄었다. 스스로 시류를 따라 사라지고 있는 개 식용 문화의 현실이다. 이를 굳이 법을 제정해서 막으려는 국회의원은 개 식용 금지법을 주장하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전에 관련 사안들을 먼저 살피고 애완동물법을 먼저 정비함이 맞다. 애완동물의 대상이 개만 되어야 하는 이유 역시 이해가 어렵고 동물권은 왜 개에게서만 찾아야 하는지도 이해가 힘들다. 불과 몇 마리의 전염병 감염으로 수천수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고, 종돈과 종우의 삶, A3 종이 한 장 크기에서 평생 알만 생산하다가 폐기되는 닭, 강아지를 친구로 격상시킨 분들이 내다 버리는 일 년에 8만여 마리의 유기견 안락사 등에서는 어떤 동물권을 찾아야 하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에는 번식장이라는 이름으로 애완견을 번식시켜 대규모 유통하는 곳까지 나타났다. 난산인 개들은 가위로 배를 가르고 죽으면 냉동고에 보관했다. 이렇게 생산된 애완용 강아지가 경기도 모 지자체에서 1,400마리, 충청도 모 지자체에서 500여 마리가 구조(?)되었다. 이렇게 강제 번식된 애완용 강아지들은 펫숍 등 반려동물 경매장으로 넘겨졌다는 기사를 접하며 동물권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인간의 문화는 흐름에 맡겨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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