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요즘 한글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졌다. 국수주의에 취한 게 아니고 자국 문자가 없는 국가에서 한글을 선택해서 배우는 경우가 급속히 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가장 배우기 쉽게 만들어진 소리글자이기에 당연하다. 한글의 현재 쓰임은 세계 10위권으로 우리 경제력과 위치를 같이한다. 그만큼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솔직히 영미권의 문자와 중국 혹은 일본 등의 문자는 한글과 비교 불가다. 이 사실은 세계의 언어 학자들이 이미 인정했고 영리한 사람은 한나절이면 익히고, 미련한 사람도 며칠이면 익혀서 사용할 수 있다.’라는 과거의 기록에서도 이는 증명된다. 15세기 중반에 태어난 한글은 당시 집현전 학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주춤했지만, 시나브로 민중의 틈새로 스며들면서 문자 기록의 갈망을 채우기 시작했다. 부녀자 사이에서 오가는 서간과 잡다한 기록을 후대에 전할 수 있는 매체가 되어준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의 한글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여전히 사대부와 선비들은 한자를 사용했고 한글은 간신히 명맥만 이어갔다. 그렇게 일제 강점기를 맞으며 소멸의 위기까지 몰리고 만다. 학교에선 일본어가 국어가 되었고 위대한 한글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다시 한글이 지면으로 떠오르는 시기는 한국 전쟁이 끝나고 교육 열풍이 점화되면서부터다. 하지만 한글은 소리글자의 효용성을 벗어나지 못했고 모든 단어는 한자로 표기가 되었다. 신문과 관공서의 문서는 당연히 한자어 단어는 한자로 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로서의 과학성과 효용은 따라올 문자가 없지만 뜻을 내포한 한자 단어는 소리만으로 해석이 어렵다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한글 학자들은 단어의 뜻을 이미 알고 있으니 굳이 한자 표기가 필요 없음을 주장했지만 사실 억지에 불과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1990년대까지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한자는 한글 학자들의 주장과 교육 당국의 판단으로 서서히 사라졌고 교과에서도 필수 과목에서 빠지고 말았다. 우리 말의 비극이 시작된 시점이다. 한글만으로 기록하지 못할 내용은 없다. 최초 만들어진 28자에서 4자를 버리고 다시 정비된 한글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세계 최고다. 자음은 오행을 바탕으로 한 ㄱ, , , , 5, 모음은 천지인 단 3개의 조합으로 무려 11,172개의 조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참고로 발음은 중국어는 500개 미만이고 일본어는 300개 미만, 영어는 400개 미만에 불과하지만, 한국어는 기본이 2,700개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8,800개의 발음이 가능하니 역시 비교 불가다. 문제는 기본이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의 구사력이다. 한자를 연구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중국 상나라 때부터 한자는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현재 중국에서 사용하는 발음과 우리 발음이 대부분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중국 사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한글 학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4개의 자음을 버려서 발음의 한계를 만든 것이고, 다음 실수는 한자 병행 표기를 강제로 없앤 것이다. 우리 글은 한자와 한글의 완벽한 조화로 그 빛을 발하게 만들어졌다. 한자 교육의 소멸은 우리 글과 말을 반편이로 만들었다. 뜻을 모르고 한글로서의 단어만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光化門의 현판을 바꾼 기사에서 文化光현판이라는 표기를 보았다. 그나마 이 인부에게 가려 보이지 않으니 으로 기사를 올렸다. 야구 기사에선 을 풀었다는 표현이 등장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을 동해 번쩍 서해 번쩍으로 기사 제목을 잡았다. 이러한 현상은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를 한글 발음만으로 이해해야 하는 MZ 세대의 새로운 고민이다. 한글 단어를 한자로 풀면 보통 몇 개의 뜻을 내포한 단어가 나오기에 한자를 모르면 한글도 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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