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지난 차례 이어서> 이 얼마나 서글픈 자기 위안이며 넉살좋은 합리화란 말인가?

정종 교수는 그의 문학을 <빈궁문학>이며 <자성문학>이라 평했다. <철없는 사람><두 딸> 속에 담겨진 가난 이야기 속에서 글의 외형으로 드러나 있는 현실 묘사와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심경을 읽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철없는 사람>자성빈궁이전에 독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현실에 대한 이해와 긍정, 초현실적 세계관이거나 작가(인간:새 인간과 연계)의 자존심으로써 <“아유 정말! 쯧쯧, 이게 무순 꼴이우! 사내 하나가 어떻거면 집 하나를 못 얻어서....” 쓰레기통에 범나비 날아들 듯 어느 날 한 번 번뜻 들었던 P여사의 경멸이라느니보다 동정에 못이기는 눈초리 앞에서 그럼 날더러 어떻거란말이요, 권세의 문 앞에 거렁뱅이가 되란 말요?...” 자랑될 것도 없지만 피난민에 대하면 이도 크지 않수?> 작가의 단순한 자존심을 표현한 대목이 있고,

<이것은 확실하게 제 소위 깨끗에 대한 긍정이었다. 그러나 동정하는 앞에서만은 그렇게 태연할 수 있다는 저 자신의 비열함을 또한 스스로 모르는 것도 아니다. P여사의 방문이 더구나 반가웠던 소치는 그 뒤 며칠까지 은연중 새로 얻을 집에 대한 소망을 나한테 갖게 했기에 말이다.>의 복잡미묘한 인간 내면의 갈등과 고뇌가 깊이 스며있는 대목에선 독자들이 논리적으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tlag하되고 상승 되는 것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소청의 <철없는 사람>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하는 의문과 회의에 빠지게 된다. 외경(畏敬)심을 가져야 하는가? 아니면 분노를 느껴야 하는가, 동정을 해야 하는가? 한 숨을 쉬어야 하는가? 도데체 진실한 삶,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깊은 고민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철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철없는 사람>은 한 편의 글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목메어 부르는 영혼의 엘레지이며 절규요 처절한 몸부림이란 표현으로써 그저 가슴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특히<철없는 사람>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문어체(文語體) 보다는 구어체(口語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작품을 통해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철학이나 사상을 독자들에게 강조하지 않으며,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교훈적인 점이나 선지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일반의 수필과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그의 작품 전체가 수필가의 문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생활의 언어들과 남도 사투리, 삶의 숨결 같은 토속어들이 활용되고 있으며, 문장의 구성 또한 일상의 그대로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청 수필의 그러한 특징을 통해 독자들은 무엇을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도데체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찾고 얻어야 할 것인가? 그 깊이에는 어떠한 감동이나 가르침으로도 체험할 수 없는 그 무엇, 그저 읽고 느낄 수밖에 없는 우리들 영혼의 씻김, 영혼의 카타르시스 같은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수필을 통해 그러한 특징적인 것들과 심미안적인 깊이까지도 읽어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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