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새해 인사가 엊그제인가 싶더니 벌써 신 정월 중순을 지나고 있다. 알다시피 올해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선거를 치르는 해다. 이미 방글라데시는 총선을, 대만은 총통 선거를 마쳤다. 대만 총통은 친미와 친중을 저울질하며 선출이 되지만 우리와는 큰 관계가 없다. 미국과 중국의 등허리에 낀 우리 외교가 대통령의 능력을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다. 지구촌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42억 명이 선거에 참여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선거는 4월에 치러지는 우리 총선과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다. 이렇게 선거가 많은 해에 나타나는 현상은 폴리코노미이다. 폴리코노미(Policonomy)는 정치의 폴리틱스(Politics)와 경제의 이코노미(Economy) 합성어로 경제가 정치에 휩쓸리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경제는 단 2년 만에 최악의 성장률에 빠지고 말았기에 더욱 걱정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총선이라는 정치 기류에 휩쓸려 석 달을 견뎌야 한다. 벌써 여당은 빚잔치를 약속하고 퍼주기 정책을 흘리고 있다. 미리 상환한 사람은 성실한 바보가 되고, 과학을 멈추고 마련한 돈으로 뿌리는 명분 없는 돈은 발전의 뿌리를 자르고 있다. 세계 선거의 해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일단 당선을 노리는 모리배 정치꾼들에 의해 국가가 멍들어가고 있다. 서민은 오늘이 당장 힘들지만, 정치인들은 이합집산으로 이권을 찾아 헤쳐모여를 실천하고 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우리 정치는 배반의 정치다. 정의당 청년 정치인으로 등원한 류호정은 19위 순서를 1위로 바꿔 비례대표를 만들어준 심상정을 비방하며 탈당했고, 이준석 여당 전 대표 역시 친정을 손가락질하며 새집을 짓겠다고 떠났다. 우리 고장의 유력 정치인 역시 평생 몸담았던 민주당을 버리고 신당의 뜻을 펼치기 위해 떠났다. 절간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침까지 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모두 정상이 아니다. 특히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빅 텐트와 텐트를 벗어난 큰 집을 거론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은 아무리 봐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내 짧은 소견으로도 정치는 나름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소위 정치를 하는데 소신이나 철학이 없으면 그냥 권력 지향성 직업이 된다. 출발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이들의 정치적 소신이 같을 수는 없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 진입의 목표만 같지 않을까. 물론 나름의 철학과 소신을 내세우지만, 타당성은 국민이 판단한다.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나름의 타당성은 그냥 본인의 합리화일 뿐이다. 이젠 그것마저 지겹다. 특히 한국의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도덕성의 결여라는 공격은 모두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상대의 도덕성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도덕성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 심지어 근거 없는 일을 고발해서 수사를 받게 하고 수사를 받는 상황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기이한 현상을 우리는 요즘 질리게 보고 있다. 그리고 확정적 범죄자로 낙인까지 찍는다. 과거를 돌아보자. 이렇게 당했던 인물이 셀 수 없이 많다. 다시 재심이 이뤄지고 무죄 판결이 줄을 잇지만 이미 그 사람의 인생은 막을 내린 이후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게 바로 도덕이다. 도덕의 의미나 알고 도덕의 결여 운운하는지 궁금하다. 노자의 도경과 덕경의 합본이 도덕이고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을 말하는 것이 노자의 사상이다. 철학적 해석을 떠나서 가장 단순하게 풀어도 도생덕양이다. 도는 만물을 생성하게 만들고 덕은 이를 길러낸다. 공자는 예와 악을 말했다. ()로 시작하고 악()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예는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를 말하고 악은 이를 풍성하게 안내한다. 그래서 인간이 절대 외면해선 안 되는 게 바로 풍류 즉, 음악이다. 이는 모두 인간의 근본 인성과 궤를 같이한다. 도덕성의 결여는 곧 인간성의 결여이다. 인간성의 결여는 배신이라는 모습으로 강하게 삐져나온다. 단테는 신곡에서 가장 큰 죄를 배신이라 했다. 대선으로 시작한 배신의 정치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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