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와중(‘제1차 왕자의 난’)에 방원은 하나의 기회를 잡는다. 즉, 정도전 등이 태조(이성계)의 병세가 위독하다고 속이고,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인 뒤 단칼에 그들을 죽이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이다. 이에 방원은 자신의 사병(私兵)들을 동원하여 정도전 일파를 기습하여 모두 죽이고, 세자 방석을 폐출하여 귀양을 보내는 도중에 죽여 버린다. 그리고 이어서 방석과 같은 어머니를 둔 방번마저 살해하고 만다. 정도전에게는 ‘종친을 모해했다’는 죄명이 씌워졌으며, 그의 두 아들 정영과 정유는 아버지를 구하러 달려가다가 살해되었다. 얼마 뒤 조카 정담은 큰아버지와 사촌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집에서 자살했다. 오직 맏아들 정진만이 당시 태조를 수행하여 삼성재(三聖齋) 방문 길을 수행하던 중이라,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였다.

이렇게 ‘1차 왕자의 난’이 마무리되자, 이방원은 짐짓 세자의 자리를 제2왕자인 방과(芳果-한씨 소생의 둘째 아들. 이방원의 친형)에게 양보한다. 이에 두 아들과 사위까지 잃어 크게 상심하고 있던 이성계는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니, 유약(柔弱)한 세자가 왕위에 올라 정종(定宗)이 된 것이다.

그 후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다. 비록 이방원이 실권을 장악하긴 했으되, 아직 사병을 거느린 동복형제(同腹兄弟)들이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넷째 아들 방간 역시 왕위를 이어받으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바로 이때 지중추부사(정2품 관직) 박포(朴苞, 조선 전기의 무신)가 방간으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키도록 충동질을 한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공을 많이 세웠음에도, 일등공신에 오르기는커녕 도리어 귀양을 갔던 박포는 ‘방원이 장차 방간을 죽이려 한다.’고 거짓말을 꾸며낸 것이다.

이 말을 믿고 방간은 사병을 동원하였다. 이를 눈치 챈 방원 역시 사병을 동원하여 개성 시내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는데, 결국 이 싸움에서 방원이 승리하여 방간은 유배되고, 박포는 사형을 당했다. 난이 평정된 뒤, 방원의 심복 하륜의 주청을 받아들인 정종은 상왕(上王) 태조 이성계의 허락을 얻어, 1400년 2월 방원을 세자로 책봉한다. 그리고 이어 11월 왕위를 방원에게 물려주니, 방원이 왕위에 올라 제3대 임금 태종이 된다.

한편, 자신의 큰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이방원이 세자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형제들을 잡아 죽이니, 아비인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더욱이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은 자신의 실권이 무너지는 사건이기도 했다. 분노와 울분에 가득 찬 이성계는 결국 함경남도 함흥으로 떠나버린다. 상왕이 함흥에 칩거하자 정통성에 흠집이 생긴 태종은 문안(問安) 사신을 자주 보낸다. 그러나 이성계는 번번이 화살을 쏘아 이 사신들을 모조리 죽이고 만다. 여기에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가겠다는 사람조차 없게 된 마당에 이성계의 옛 신하였던 박순(朴淳,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이 사신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새끼가 딸린 말 한 필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태상왕(현재의 왕 이전의 전전왕, 前前王) 이성계가 연회를 즐기고 있는데, 말의 구슬프고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아닌가? 박순이 의도한 것은 바로 모자(母子)간의 정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부름을 받은 박순이 문안 인사를 하자, 이성계는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계속)  (최근 저서『고집불통 철학자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