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최근 영광이 포함된 총선 지역구가 공천으로 인해 시끄럽다. 현역 의원이 단수 공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의외의 결과에 주위가 대부분 어리둥절했다. 이석형 예비후보와 박노원 예비후보는 예상대로 거센 항의를 했고, 다시 경선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단수 공천이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경선에서 원천 배제된 이석형 전 함평군수는 이에 불복, 민주당을 탈당해서 무소속 출마를 밝혔다. 공천재심위의 3인 경선 결정을 최고위원회가 기각하고 단수 공천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개호 의원은 이낙연 대표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친 이낙연 계로 보는 게 대체적인 관점이기에 이번 단수 공천은 친명 우선 공천이라는 프레임을 조금이나마 희석해보고자 하는 의도로 보기도 하지만, 하필 그 지역이 우리 선거구라는 데에서 현타가 오는 것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데 단수 공천으로 민심의 결정권에 쇠말뚝을 박는 행위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생물이 아닌 건어포나 건육포가 되고 말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공천장이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공천과 탈락의 갈림길에서 정치 철학은 무참히 짓밟히고 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야를 막론하고 행태가 대동소이다. 국민의힘은 특검 방탄의 사명으로 뭉쳐 현역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민주당은 색깔이 다른 불량 콩을 골라내고, 해묵은 가지는 보여주기 식의 전정을 하고 있다. 굳이 표현하면 국민의힘은 정()이고 민주당은 동()이니 민주당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자연은 움직임이 멈추면 사멸하기에 끝없는 변화를 요구한다. 그래서 신구의 조화가 가장 필요한 곳이 국회이기도 하다. 물갈이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고이면 죽는 게 자연의 진리다.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의 주 과목은 사서삼경이다. 삼경의 시경·서경·역경(주역) 중에서 가장 상수에 두었던 과목이 역경이다. 역경을 주역으로 부르는 이유는 주() 나라 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게 바로 태극이다. 우리가 국기로 사용하는 태극기도 태극과 건곤감리의 주역 사괘를 사용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태극이 변화를 의미한다는 건 대부분 잊고 있다. 현재 우리가 태극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태극은 잘못된 것이다. 태극은 음과 양이 가로로 눕지 않으며 세로로 경계를 짓고 있어야 맞다. 양은 아래로 흘러내리고 음은 위로 치고 오르며 끊임없는 교반을 통해 고임이라는 죽음의 현상을 피한다. 구들방에서 뜨거워진 공기는 위로 오르고 천장 쪽의 차가워진 공기는 아래로 내려오는 현상과 같은 이치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우주의 생성은 태극이고 태극은 자연의 이치다. 궁궐에서 왕비가 거처하는 곳을 교태전(交泰殿)이라고 하며 입구 문틀 위에 태극과 함께 새겨져 있다. 음과 양의 교반은 생명이고 왕비는 왕가의 자손을 이어갈 중요한 위치에 있으니 당연하다. 만물은 고이면 죽는다.

이번 총선 공천 현황을 보면서 국민의힘이 염려스러운 건 바로 고임이다. 보통 현역 물갈이는 50%를 넘기기 마련인데 여당은 대통령의 연못에 기존의 낙엽을 가두고 물꼬를 막아버렸다. 특검 방탄을 위한 임시방편으로 보이지만 후유증은 심한 부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노자는 까치발로 서는 자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企者不立), 스스로 자만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自矜者不長). 그래서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는 자는 드러나지 않는다(自是者不彰).”고 했다. 무조건 자기가 옳고 자기를 불리하게 하는 자는 부도덕하거나 정의롭지 않다고 규정을 해버리면 이 또한 심리적 고임 현상이다. 교반이 없는 정신은 반드시 부패하고, 사람과 짐승의 경계가 허물어지듯이 선택의 경계 또한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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