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한 마을에 함께 모여 공동체의 양식을 가꾸어 나가고 , 그 공간을 의미하는 질서의 세계로 꾸려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마을 주변, 또는 마을 곳곳에 마을 신들을 모시고 일정한 기간에 마을 굿을 연다. 묘량의 영당과 운암 마을에는 장승. 수살이라 불리우는 입석이 마을신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장승배기’라고 부르는 마을 입구에는 4기의 장승이 있다. 2기의 목장승과 2기의 석장승이 그것인데, 목장승이 낡아 1993년 정월 보름에 화강암으로 만든 사각형의 석주위에 얼굴을 새긴 장승을 새로 세웠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목장승의 크기는 남장승의 높이 115cm , 폭 50㎝이고,여장승의 높이 130㎝, 폭 40㎝이다. 목장승에는 "천자봉목(天子封木)" 이라는 명문이 새겨 있었다고 한다. 새로 세운 화강암 장승의 크기는 남장승이 높이 190㎝이며, 여장승도 높이 190㎝이다. 방향은 마을을 향해 왼쪽에 남자장승이 남서향으로, 오른쪽으로 여자 장승이 북동향으로 마주보고 서 있다. 명문은 남장승에는 천하대장군, 여장승에는 지하여장군이라 새겨져 있다.

김두하의 보고(『벅수와 장승』, 집문당, 1990)에 의하면 목장승의 재료는 밤나무였으며, 여장승의 형상은 얹은 머리 흔적이 보이고, 남장승은 관인형의 머리형을 갖추고 있었다. 이 두 목장승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현재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지만 "天子封木"이라는 명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제보에 의하면 이 두 목장승은 목수였던 이채신씨의 조부께서 60여년전에 밤나무로 제작한 것이며 몸통에 천자봉목이라는 명문이 써 있다고 한다. 이 독특한 명문은 ‘중국의 천자가 봉한 나무’란 뜻으로 중국 강남에서 온다는 천연두를 막기 위해 중국 황제의 위력을 빌어 병을 막으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국적으로 이러한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귀한 자료이다.

이로 보아 이 곳의 장승은 수살과 더불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액을 막는 마을 수호와 질병예방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4기의 장승에 대한 제의는 따로 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장승에 대한 제의 행위가 중단된 반면 수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외경심과 옷입히기 행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수살을 당신(堂神)으로, 장승을 당신의 하위신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승의 변화된 모습, 즉 목장승의 마모와 그에 따른 석장승의 제작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석장승을 그다지 신성시하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정월 보름날 아침 일찍 마을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위치한 장승배기에 모여 각 가정에서 추렴한 짚을 모아 줄을 만든다. 마을에서는 줄을 만드는 것을 ‘줄디린다’고 표현한다. 이 줄은 줄다리기와 수살에 옷입힐 때 사용한다. 줄만드는 일이 한참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지난해 수살에 감아두었던 줄을 벗기고 불로 정화를 시킨다.

줄만드는 일이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을 한바퀴 돈다. 마을 공간을 정화시키고 마을 영역을 확인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 때 풍물패들은 앞장서서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공동 우물에 멈춰 절을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줄을 메고 마을 돌기가 끝나면 남녀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를 하여 여자가 이기면 풍년이 들고, 남자가 이기면 돈이 찬다고 믿는다.

여성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는 것은 지신이 여성이고 농경을 처음에 여성이 주관하였기 때문이다. 남자가 이기면 돈이 찬다는 것은 밖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남자이기 때문이며 힘이 넘쳐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으로 이해된다. 줄다리기를 통해 남녀 서로 열심히 경쟁하지만 결국 여자편이 이긴다. 남자들은 자기들이 봐주었기 때문에 여자편이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바탕 신나는 줄다리기가 끝나면 그 줄을 가지고 마을 입구로 되돌아와 수살에 줄을 감는다. 줄을 감는 것은 옷을 입히는 것이며 이렇게 하면 마을에 살(액)이 들어오지 않아 일년 내내 편안하다고 마을사람들은 믿는다. 예전 줄을 감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의 꿈에 수살이 옷을 해달라고 나타나 다시 그 풍습이 이어졌다고 전한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