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예원예술대학교 스포츠레저복지학부)



 

 1815년,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파리 아카데미에 그때까지만 해도 신탁처럼 여겨졌던 뉴턴과 라플라스의 입자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논문이 제출됐다. 광학(光學)의 난제를 하나씩 명쾌히 풀어 나간 이 이론은 곧 빛에 대한 새로운 이론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는데, 이 충격적인 논문을 제출한 사람은 어처구니없게도 지방을 돌면서 열차 선로 건설을 감독하던 변방의 무명 엔지니어 프레넬(Frenel)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프레넬의 이론은 빛의 매질 ‘에테르(ether)’의 효과를 발견할 수 없다는 하나의 난제를 남겼다. 그로부터 100년 뒤, 세계 물리학의 중심은 독일의 베를린과 괴팅겐, 그리고 네델란드 레이덴이었는데, 세 곳의 쟁쟁한 세계적 과학자들 중 그 누구도 이 에테르가 제기한 난제를 풀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돌파구는 전혀 뜻밖의 외곽에서 열렸다. 1905년, 스위스의 작은 지방도시 베른이라는 시골 특허국에서 근무하던 직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특수 상대성 원리(special theory of relativity)를 제창함으로써 프레넬의 파동성을 비롯한 고전 물리학의 토대를 송두리째 붕괴해 버린 것이다.

 


 프레넬과 아인슈타인은 모두 당시 전통 과학 연구의 중심지에서 비켜 있었던 까닭에 일류 두뇌들이 당연시하던 이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전통적 명문의 인재들이 기존 패러다임의 틀에 갇혀 씨름하고 있을 때, 이 두 무명의 인재들은 문제의 근원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직시, 이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논리를 창출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변방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던 그들의 현실이 오히려 중앙의 과학자들은 상상도 못했던 창조성의 산실(産室)이 되었던 것이다.


 


  메이지 이전 에도 막부 시대의 일본에서는 무사계급이 지배계급이었는데, 이들은 유교정신에 따라 동양의 고전을 교육받았는데 비해, 하급무사들이나 평민들, 상민들은 절에서 승려들이 경영하는 데라고야라는 학교를 다녔다. 이 데라고야는 에도 후기부터 사립학교인 사설 의숙(私塾)들이 되는데, 여기서는 영어, 네델란드어, 상업 등의 신(新)학문을 가르쳤다. 상류층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 구식 유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오히려 하류층 젊은이들이 이러한 사숙들에서 서양 문물을 배워 현실을 타파하는 메이지 유신 세력의 핵심이 되었던 것이다. 현대 일본 교육이 당시 사회 하류층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사실과 함께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일본에서는 당시 권력의 중심지였던 도시보다 오히려 지방이나 항구 도시에서 더 열린 생각을 가지고 개화 교육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한 예로, 2차 대전 후 일본 정치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시다 시게루의 고향인 고오치(高和) 현은 오늘날에도 철도가 닿지 않는 교통이 매우 좋지 않은 시골 마을인데, 희한하게도 이곳으로부터 일본의 역대 정부 각료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이 고장이 교육에 열심이었던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막부 말기에 일본 정국이 외세 배척이냐 개국이냐를 놓고 양분되어 있을 때 이곳의 교육기관에서는 일찍이 청소년들에게 세계적인 넓은 시야를 갖도록 교육했다. 어설픈 도회지보다 이러한 벽지 시골 마을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세계적인 시야를 갖게 하는데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었던 것이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13세 때, 아리마 키헤이라는 유명한 사무라이와 결투하여 목을 베었고, 그 후 29세가 될 때까지 일본 전역에서 최고수들을 60명이나 저승길로 보낸 전설적인 검객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의 자서전 「오륜의 책」에서 그는 자신의 검술은 어떤 스승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모두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고 했다. 우주 삼라만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터득한 자기만의 독특한 검법이라는 것이다. 즉 그의 선생은 바로 자신의 창의력과 관찰력, 노력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가 오사카 제일의 검술도장에서 수학했더라면 몇 번은 이겼을지 모르나 곧 죽었을 것이다. 칼싸움에서 은퇴한 후 무사시는 또 묵화(墨畵)를 그렸는데, 묵화 솜씨도 곧 칼 솜씨만큼 탁월해져서 묵화를 능가하는 화가는 당시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칼싸움에도 득도(得道)하면, 다른 어떤 일에도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그 비결을 9가지로 요약했다. 그 첫째는 정직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나머지 여덟은 자신의 일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은 한시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마하라는 내용이다.


 


  일본인 중에는 칼 잘 쓰는 사무라이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19세기 중반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 몇 척 앞에 맥없이 무릎 꿇었다. 아마 칼로만 싸웠다면 무수한 미국인들이 죽어도 일본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식 총과 대포, 쇠로 만든 군함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무기는 칼 밖에 모르던 일본인들을 무너뜨리고 만다. 일본은 그 수치를 잃지 않고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을 따라가기 위해 온 나라를 혁신하고 국력을 신장시킨 후, 복수하기 위해 다시 미국에 싸움을 걸었다. 미국은 초반에 좀 고전했지만, 곧 원자폭탄이라는 전혀 새로운 무기로 일본을 무너뜨린다. 486 컴퓨터는 펜티엄 급 컴퓨터가 나오면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어 있다. 이것은 창조적인 파괴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다. 이것이 오히려 기업과 사회,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이 창조적인 파괴는 지나치게 틀에 박힌 전통의 일류 엘리트 기관에서는 오히려 나오기가 어렵다. 자신의 전통과 명성에 대한 지나친 자만 때문이다.


 


  오늘날, 아직도 학벌과 집안을 리더의 자격으로 지나치게 따지는 우리 문화에서 이것은 아주 의미 깊은 역사의 진리를 가르쳐 준다. 한국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핵심이 지나치게 수도권에 집약돼 있다. 대학도 몇 군데 빼놓고는 현실적으로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동부의 하버드나 예일의 질이 좋아지는 것은 서부의 스탠퍼드나 버클리 같은 좋은 경쟁자들이 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류 엘리트 양성 기관들을 절대시하면, 비(非)전통적이지만 신선하고 탁월한 변방의 진주들을 간과하기가 쉽다. 유럽이나 남미 축구의 골 결정력이 높은 이유도, 어릴 때부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조성과 돌연성을 쌓도록 축구를 장난처럼 즐기게 한 때문이라지 않는가? 지방 정부 조직들이 중앙보다 더 뛰어날 수 있도록 인재와 예산을 수도권 밖으로 투입해줘야 하고, 우량 기업들을 지방으로 많이 분산시켜 줘야 하고, 대학도 서울의 대학들을 견제할 수 있는 탁월한 지방대학들이 많이 서게 해야 한다.


 


  리더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단체 내에서도 선입관을 깨고 바라보면 번뜩이는 변방의 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튀게 함으로써, 기존의 인재들도 자극을 받아 한 단계더 높이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잠언의 말씀처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사람이 사람을 날카롭게 할 것”이므로 탁월한 리더를 중심으로 살아 움직이는 단체에는 4가지 요소들이 있다. 첫째, 그 단체의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대단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 맡은 일의 크기와 종류는 다 다르다 할지라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전체 그룹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일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둘째, 배움과 실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리더나 따르는 이들이나 할 것 없이 다들 자신이 주어진 일에 최고의 수준으로 해내는 전문성과 열정을 갖고 있다. 이런 단체의 리더들은 실패(failure)란 없으며 단지 다음번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를 보여 주는 정직한 실수(mistake)만 있음을 강조한다. 셋째, 단체의 구성원 모두가 돈독한 공동체 정신을 갖고 있다고 한다. 확실한 리더십이 서면, 팀워크가 이뤄지고 거기서 가족 같은 침밀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던 사람들도 이렇게 살아있는 조직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한 가족이라는 감점을 느끼게 된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찍은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도 달 착륙이라는 엄청나게 복잡한 일을 그토록 성공적으로 치러 낼 수 있었던 것은 달 탐사 팀원들의 협동정신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넷째,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흥분이 된다. 탁월한 지도자들이 있는 조직에서 일할 때는 일이 즐겁고 도전적이며 자신의 모든 능력과 상상력을 계속 자극한다. 탁월한 조직의 리더십은 사람들을 억지로 떠밀기보다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따라오게끔 유도 하는데 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불붙여 줌으로써 그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낼 수 있는 힘을 준다. 탁월한 리더들은 그 단체가 추구해야 할 꿈을 끊임없이 얘기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동안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 한다고 믿어 왔고, 그 까닭에 일은 많이 이루어 냈지만 사람들을 파괴해 버렸다. 사람들을 몰아붙여 일벌레로 만들었지만, 그들 속에 있는 열정과 은사에 불을 붙이는 신바람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는가? 일은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었지, 긍지와 꿈을 가지고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나라, 같은 회사,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 서로 피나게 경쟁만 시켰지, 하나의 몸을 이뤄 매진하는 윈-윈(Win-Win)의 팀워크를 만들어 준 적이 별로 없었지 않은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세계적인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은 간부 승진의 기준으로, 그 사람 밑에 있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어마나 많이 발전했는가를 제일 중시한다고 한다. 즉 얼마나 자기를 따르는 이들을 성공시켰는가를 본다는 것이다. 리더는 부하들을 이용해서 자기가 성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을 거름으로 썩혀서 그 토양에서 차세대의 거목들을 키워 내는 사람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