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선/ 영광신문 편집위원

문자로 살자
문자(文字)
이성(理性)이 다스리는 너
때론 바보스럽지
열불 나 벗었어도
상대는 모르고
속이 숯 되어도
매운 내 조차 내지 못하니
말
감정(感情)에 뛰는 너는
죽어도 모른다
죽었다 깨나도 모른다
병신이라 비웃어도
그 옳음을
그래 세상이
이만치 평화로운 거야
문자로 하자
말도 문자로 하자
이성으로 하자
감정도 이성으로 하자
세상이 더 평화롭도록
모처럼 맞이한 휴일을 집에서 보냈다. 요즘 마음이 불편하다, 인내심이 없어졌다, 사람을 만나기 싫다. 그래서 더욱 하루 종일 후텁지근하더니, 오후 늦게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졌다. 산에 가기로 하였다. 이름을 하자면 우중산행(雨中山行).
인적이 벌써 끊긴 등산로에는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두꺼비와 작은 산개구리들이 여기저기 나와서 비를 맞고 있었다. 날 마중 나왔나? 산개구리들은 팔짝팔짝 뛰어가고 두꺼비는 날 빤히 쳐다본다. 하여 발길에 여간 신경을 쓰고 걷는데 길옆이 환하다. 여태 거기 있는 줄도 몰랐는데 때죽나무 하얀 꽃이 길을 비춘다.
산등성이에 올랐다. ‘······마흔아홉, 쉰.’ 운동기구에 누워 팔과 등 운동을 하였다. 얼굴에, 꼬옥 감은 눈 위에, 솔잎 끝으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을 맞으면서 오기(傲氣)까지 보태가며 수(數)를 채웠다.
몸을 일으켜 팔각정으로 향하였다. 오름길위에는 빗방울들이 한데모여 인간의 오염들을 굽이굽이 아래로 아래로 씻어 내리고 있었다. 팔각정에 올라 시계를 꺼내보니, 여섯시 사십오 분. 시원해서 일까? 오랜만에 산에 올랐는데도 상당히 빨리 올랐다. ‘지금 이 산의 주인은 나 일거야’ 하고 있는데, 비 사이를 뚫고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아래 골짜기에서 큰 지저귐이 울리자마자 화답하는 소리가 함께 온 산에 울려 퍼진다. 어둠을 재촉하는 비안개가 저만치 오르고 있었다. 집에 전화를 하고 나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내리막길에는 벌써 산딸나무가 하얗게 피어있었다. 순간 그 하얀 꽃 속에서 분명 초록 실핏줄을 보았다. 내 눈이 밝아졌나? 아니다. 마음의 눈이 본 것이리라. 다시 오르는 길가에는 두꺼운 초록 색지를 굽이치며 오린 듯한 잎의 떡갈나무가 깔려있었다. ‘이 아름다운 나무를 관엽식물로 개발하면 얼마나 좋을까!’ 또 있다. 등산로 시작부분의 길가에 간간히 나있는 고비고사리이다.
날이 많이 어두워져 더욱 발길에 신경을 쓰고 걷는데, 앗! 뱀이 두꺼비의 뒷부분을 물고 있다가 제가 놀라 입을 놓고 스르르 도망한다. 두꺼비는 비틀비틀 내 앞으로 도망하고. 뱀은 두꺼비를 먹지 않은 줄 알았더니, 내가 잘못 알았나보다. 하긴 사람도 아무나 무는데.
한 시간여의 우중산행을 마치고 어둑해져서야 시골의 찻길로 나왔다. 아내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