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시인)/ 전 칠산문학회장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이른 아침, 영롱한 이슬을 흠뻑 머금은 햇살이 창(窓)문에 어리는 방 안에서 나는 지금 은은하게 피어나는 매화 향기에 취해있다.
아직 제 철도 아닌데 무슨 뚱딴지같은 궤변인가?
지난 군민의 날 행사 때 영광군의 초청에 의해 재경 향우회 회원 40여명이 고향의 축제에 동참하기 위해 영광을 방문했는데 그 때 동양화(문인화)를 하시는 의당(懿堂) 김용범 화백께서도 동행하셨다. 화백께서는 향년 85세, 노구를 이끌고 먼 길을 오신 터라 일행들과 함께 귀경길에 오르지 않고 그 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도 만나보고 내친김에 선영에 들러 추석 성묘를 미리 드리고자 2일간을 더 영광에 머무르셨다.
-영광 서예협회 회원 전 현장에서-
향우회 회원들을 태운 대절 버스가 서울로 떠나간 후 의당 선생님과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군민의 날 행사의 부대 행사로 열리는 사단법인 한국 서예협회 영광군지부(지부장 주규남) 회원전이 열리고 있는 영광 우체국 3층 전시실에 들렀다.
전시장엔 그동안 갈고 닦은 영광 서예인들의 열정과 혼이 담긴 작품들이 좁은 전시장의 네 벽면에 상하좌우 여백도 없이 걸려있었는데 그 장면을 대하는 순간 나는 우리 영광에 쓸 만한 전시 공간 하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씁쓸한 심사를 가눌 길 없었다. 그런 중에도 한 가지 위안이 되었던 것은 여러 가지 악조건 하에서도 그나마 이런 전시회라도 접할 수 있고 또 주변 상황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서예인들을 만날 수 있었음이며, 그들과 소주 몇 잔을 주고받으며 영광의 문화와 예술을 이야기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록 좋지 않은 환경일지라도 사면 가득히 걸려있는 작품들 속에서 풍겨오는 그윽한 묵향과 그 고요한 정취에 의해 마치 내가 조선시대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 도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느낌을 받는 순간만큼은 세속에서 받았던 온갖 상처들과 근심 걱정들도 모두 떨쳐버릴 수 있었으니 이만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아마 예술이 위대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까닭이 그런 연유 때문이리라!
예술작품을 대하면서 사유하고 느끼는 나만의 감정을 타인으로부터 강요받지도 않거니와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늘 현실을 근 간으로 사람에 의해 창작되는 것이기에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맹목(盲目)이 아니라서 그 것은 어쩌면 종교보다도 더한 절대성을 지니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도 이에 다름 아니다.
-천 년 세월에 느끼는 그 마음은 오직 하나이며, 만리 밖에서 느끼는 그 정도 하나-
다음 날 아침 나는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의당 선생님이 투숙하고 있는 아리아 호텔로 향했다. 숙소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벌써 왔는가? 문 열려있으니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선생님께서는 작업을 하고 계셨는데 벌써 화선지 수 십장이 구겨져 있었다.
“마음이 안정이 안 되니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구만, 작업을 포기해야겠네.” 그러시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버리려고 한쪽으로 밀쳐둔 그림들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다.
“선생님 잠깐만요” “저거 한 번 자세히 볼게요.”
“에이 이 사람아 이 것 마음에 안 들어서 찢어버려야 하네.”
억지로 우겨서 펴놓고 보니 홍매(紅梅)를 그리다 만 것인데 가까이에는 마르고 성긴 가지에 선명한 매화 가 더러는 만개해 있고 더러는 이제 막 봉우리를 맺고 있었으며 더러는 이제 막 움이 트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보다 멀리 서 있는 매화나무가 희미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선생님 이 작품 화제(畵題)를 제가 지을 테니 완성해서 제게 주십시오.”
4년 전이던가 백수읍 장산리에서 칩거하시며 한사코 사군자(四君子)만을 고집하시는 소석(素石) 김성영 선생님 댁에 방문 했을 때 소석 선생님과 나는 술을 대작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소석 선생께서 “내가 자네한테 줄 것은 없고 난(蘭)이나 한 뿌리 쳐 주겠네. 나는 듣던 중 반가운소리라 술기운을 빌려서 ”기왕에 주시려거든 제가 화제(畵題)를 지을테니 그 제목에 맞게 그려주십시오.“
<우중난향아심처(雨中蘭香我心處) 천추일심만리정(千秋一心萬里情)>. 앞의 일곱 자는 내가 즉석에서 생각해낸 것이고 뒤의 일곱 자(字)는 학교에 다닐 때 채근담에서 보았던 것을 차운(次韻) 한 것이다. 소석 선생께서는 화제를 보고 한 참 생각 하시더니 붓을 잡는 즉시 거침없이 난을 그려냈다. 이른 봄날 세우(細雨:안개비)중(中)에 희미하면서도 가늘게 흔들리고 있는 난이라니..........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형언 할 수 없는 편안함과 고요함 그리고 강한 생동감을 느낀다.
의당 선생님의 미완성 매화를 보는 순간 나는 문득 예의 그 화제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화제에다 난을 매화로 바꿔서 <백화괴향아심처(百花魁香我心處) 천추일심만리정(千秋一心萬里情)>이라 제목 하였다. 백화괴란 모든 꽃 중의 으뜸이란 의미로 매화의 원래이름인데 옛날 매화를 군자로 치는 선비들에겐 우두머리 괴(魁)자(字)가 선비나 군자에겐 어울리지 않은 의미여서 거의 쓰지 않고 매화로만 써왔으며 지금도 대부분 백화괴의 원래 이름을 쓰지 않고 매화로만 쓰고 있다.
영광에 예술회관이 생긴다면....
<백화괴향아심처(百花魁香我心處) 천추일심만리정(千秋一心萬里情)>
“모든 꽃 중에 으뜸인 매화의 그 은은한 향기가 머무는 곳이 내 마음속이며, 천 년 세월이 흘러도 그 향기를 느끼는 그 마음은 하나요 만리 밖에서 느끼는 그 정도 오직 하나라네.” 이 얼마나 지고(至高)하고 지순(至純)하며 강인하고 다감(多感)한가?
이른 아침 방 안에 앉아서도 천 년 세월을 원유(遠遊)하며 만리 밖으로까지 회유(回遊)하는 이 행복과 자유로움을 무엇에다 견주랴?
내 마음 속에서 고요히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그 백화괴를 감상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영광에 예술회관이 있으면 세계에서 제일가는 예술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텐데... ”
그 공간에다는 어느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 먼저 우리고장 출신들의 미술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우리고장 출신 작가와 철학자들의 작품과 예술혼과 정신이 살아 숨 쉬게 꾸며놓고, 우리고장 출신 음악가들이 날마다 공연을 하게하고, 우리 고장 출신 배우들이 우리 고향을 주제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게 하고, 이미 사라져버렸거나 사라질 것들을 촬영한 우리고향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영원히 전시할 수 있게 하고, 우리 고장의 초 중 고 생들이 창작해낸 작품들을 누구나 맘껏 아무 때나 전시하고 공연할 수 있게 하고, 또 군민이라면 누구나 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렇게만 된다면 명실상부한 영광의 르네상스가 도래함은 물론 “돌아오라 쏘렌토”라는 노래 하나로 세계적 명소가 된 그 쏘렌토 언덕 못지않게 우리 영광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의 명소가 될 텐데... 그리고 우리 군민 모두가 저마다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예술인이 되고 정신과 물질이 동시에 풍요를 누리는, 정말로 살맛나는 우리 영광이 될 수 있을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