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
김철진
영광신문 편집위원

우리 사회의 공정한 배분과 관련된 주요 쟁점으로는 분배의 대상과 관련하여 현대 철학자인 존 롤스는 사회적 기본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는 사회적 기본 가치를 인간이 자신의 생에 대한 의도와 목표를 보다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상들로 간주하고 있으며, 권리와 자유, 기회와 권한, 소득과 부 및 자존감 등을 분배의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대상들을 어떠한 기준에 의해 분배할 때 공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롤스의 ‘정의론’의 핵심적 문제이다. 그가 주장하는 사회정의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 차등의 원칙, 기회균등의 원칙 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우리사회에서의 사회정의란 아직 묘연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인, 노인, 아동의 영역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지난 40여 년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가족구조의 중요한 변화는 가족구조의 다양성, 결혼연령의 상승, 결혼율의 감소, 이혼율의 증가, 합계출산율의 감소 등 실로 전통적 가족에 대한 관념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현상을 포착하게 된다. 가족형태별 변화는 가족유형의 변화에서도 보여 지는데 가부장적 직계가족에서 부부중심 핵가족으로의 변화, 홀 벌이가족 외에 맞벌이 부부가족, 주말 부부가족, 자녀를 갖지 않는 맞벌이 1세대 가족(DINK)의 증가 등의 변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밖에 모자가족과 부자가족을 포함하는 한 부모가족, 노인 단독가구, 미혼단독가구, 소년소녀가장가족, 동거가족, 동성애가족 등이 등장하여 다양한 가족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가족의 변화는 전통적 가족가치관 및 성의식에 영향을 미쳐 세대 간 연대의 약화, 개인주의의 등장, 가족 간 남녀평등 사상의 유입 등이 가족관련 가치관의 뚜렷한 변화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핵가족에 기초를 둔 근대적 의미의 가족은 가족원의 욕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유일한 형태로서 보편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생계유지자로서의 남성의 역할과 가사 담당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이라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간의 분리로 특징지어지는 핵가족의 이념적 지향성은 점차로 증가하고 있는 여성의 사회참여와 교육수준의 향상으로 크게 도전 받고 있다. 근대적 의미의 가족이 중요시하는 친밀성 및 개인성의 존중은 다양한 유형의 가족형태를 통해 보다 합리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방향에서 능동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기도하고, 핵가족의 역기능적인 현상에 의해 소외된 개인들이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수동적인 방식으로나마 모색되기도 한다. 이렇듯 삶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여러 가족형태들은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회적 담론 속에서 포용되어야 하는 상황적 국면을 맞고 있다. 부부관계를 씨실로, 세대관계를 날실로 하여 유지되어온 가족이라는 틀은 역사 속에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변화가 포착될 때마다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라는 위기론에 부딪쳐 왔다.
반면에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내용적으로 그 의미와 중요성이 더욱 더 강조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역설적인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특히 가정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가사분담은 현실적으로 여러 제한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국 사회의 남녀평등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기 위해 넘어야할 벽은 여전히 높다. '우렁 남편'이라는 말이 여성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사노동은 아직도 여성들 몫이다. 많은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육아의 난관을 뚫지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포기한다.
“왜 나만 이 일을 해야 해?” “넌 손이 없니?” “도대체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어???” 일상적으로 듣는 이런 말들은 주로 여자들, 특히 주부들이 불평조로 하는 소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예전부터 들어왔던 말이기 때문에, 듣고 있는 다른 식구들은 엄마만 또는 아내만 잘 달래서 그 순간만 넘기면 다시 원래의 편안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런 불평이 나오게 된 직접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 ‘이대로가 편하니까’라는 이유로 생활을 변화시키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제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자들, 특히 젊은 여자들은 집안일을 남자들과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한 요구도 많아지고 있다. 반면 남자들은 그동안 집안에서 대접받던 위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그 요구가 정당한 요구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이즈음에 우리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평등한 부부관계는 과연 어떻게 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집안 일, 즉 가사노동이라는 것이 꼭 여자들의 일일 수만은 없다. 이런 생각을 연구에서 처음 제기한 사람은 1970년대 초 오클리(Oakley)로, 그녀는 가사노동을 수행함으로써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불평등을 겪고 있다고 주장을 했다. 그 후 가사노동은 하나의 학문주제로 등장했으며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와 관련된 많은 연구가 본격화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80년대를 기점으로 가사노동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여성의 법적?제도적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 정도는 오클리가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그 당시와 별 차이가 없다. 특히 가정내 남편과 부인의 노동분담이 개선되었다는 증거는 더욱 찾을 수 없다. 즉 여성문제가 일상대화의 주제가 될 만큼 평등한 가정과 부부생활에 대한 논의가 일반화되었고 부인의 임금노동 참여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남편의 가사노동 참여는 계속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기혼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빈 둥지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취업에 대한 남편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남녀의 공사영역의 분리가 통합으로 변하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취업여성에게 있어서는 가정 내 이중역할의 부담의 완화, 남편의 가사역할에의 참여를 통해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혼여성의 취업여부가 가정 내 여성의 지위 및 역할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가정경제의 소유권 및 자원의 접근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부부간의 권력관계에 있어서도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남녀의 공사영역에의 분리에서 통합으로 혹은 남녀역할 분리를 극복하려는 부부관계 규범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 변화에 대한 규범은 ‘남녀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다양성과 다름으로,’ ‘보살핌에 정의를 더하여’라는 의미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둘째, 다양한 가족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가족가치관의 변화에서 가족 전제의 삶보다는 개인의 삶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대두되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족가치관에서는 가문의 명예가 중요했지만 현대가족에서는 개인의 삶의 질의 문제가 부과되고 있다. 즉 전통적인 가족주의적 가치관이 약화되면서 대신에 개인의 권리와 자아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이
자리를 잡아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대안적으로 이혼이 증가하고, 동거부부, 독신가구로 지내거나, 아니면 결혼을 해서도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생활은 개인적 선택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구조의 독특성으로 인한 속죄양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을 부도덕하게 보던 관점을 탈피하여 보다 긍정적인 자세에 서서 이들이 건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정책적 배려를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다양한 가족생활을 가능케 한 한국사회의 특성에 걸 맞는 새로운 사회규범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은 가정 안 밖에서의 남녀평등이 전제되어야 하며, 다양함과 다름을 이해해야 하고,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이 때로는 혼재되어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기혼여성의 취업활동은 개인적인 동기에서만 이루어진다기보다 가족의 경제적인 여건 및 가족관계 등이 고려되는 측면이 있어 결혼 및 출산을 기점으로 여성들이 취업생활을 중단 하거나 차후 다시 재개하는 등 취업을 둘러싼 여성들의 행위유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남녀 불평등은 점차 개선되어 가고 있으나, 개인의 의식개혁과 인식 변화만으로는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즉 국가, 제도적인 차원에서 남녀 평등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적 최소 수혜자인 여성에게 최대의 이득이 분배되어야 하는 차등의 원칙에 입각한 정책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