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시인 전 칠산문학회장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


 1970년대 말 국내 방송사들은 “대학 가요제”라는 행사를 열고 그 실황까지 생중계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다. 학사 출신 대중가요 가수들을 대량으로 배출시키기 시작한 이 가요제들은 모든 가수 지망 학생들에게 꿈의 무대였으며 인기 가수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요제에 출전하게 되는 곡들은 심혈을 기울여 작사 작곡 될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가요와는 그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곡들로써 대부분 가요제에 출전하는 학생 본인들이 작사와 작곡을 했고 연주를 하며 노래까지 불렀었다. 당시 국내 가요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이 가요제에는 주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포크 계열이나 락, 발라드풍의 곡들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의  희망, 사랑, 열정 그리고 절망과 슬픔, 분노, 정의감등을 표현하며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당시의 시대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트롯트(일명 뽕짝) 풍의 노래를 들고 나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그 때 그 사람”을 부른 심수봉이었다. 당시 나는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서 속으로 “촌스럽게 대학가요제에 나오면서 뽕짝이라니...” 하며 코웃음을 날렸었다. 어쨌든 심수봉은 그 때 가요제에서 입상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가요제가 끝난 후 이 노래는 어떤 입상작 못지않은 인기곡이 되어 히트를 치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애창되고 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그 어느 날 차 안에서 내게 물었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 때 그 사람....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픔과 체념, 그러면서도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내면의 그리움을 표현한 가사 말과 함께 비음으로 처리되는 심수봉의 호소력 짙은 창법, 가을비에 젖은듯 한 짙은 음색과 선율, 다소 우울한 하면서도 청순한 외모를 지닌 가수의 외적 이미지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이 노래는 한과 이별의 정서에 익숙한 온 국민의 가슴을 파고들기에 충분했다.


 


 우리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에 가장 특징적인 하나가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자연계의 모든 동물들은 본능에 의해 짝 짖기를 하지만 우리 인간의 사랑은 감정과 이성의 통합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본능에 의한 육체적 욕망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정신의 세계로까지 발전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는 심수봉의 절규도 이에 다름 아니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아라는 주체적 의식의 기반 위에 감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삶을 영위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는 외로울 수밖에 없고 그 외로움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견디지 못해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사랑에는 단순히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고 슬픔과 아픔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본질적 내면을 반영이라도 하듯 심수봉은 “그 때 그 사람” 이후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는 그 연장선상에서 또 한곡의 노래를 발표하여 듣는 이 들에게 강한 울림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는데 그 곡이 바로 “젊은 태양”이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햇빛 쏟는 거리에 선 그대, 그대 고독을 느껴보았나 그대, 그대


우리는 너 나 없는 나그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햇빛 쏟는 하늘 보며 웃자, 웃자, 외로움 떨쳐버리고 웃자, 웃자


우리는 너 나 없는 이방인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우리 인간들이 갖는 사랑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어떤 절대적 가치에 대한 사랑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남 과 여의 사랑일 것이다. 이 사랑만큼 가슴 설레고 절실하며 인간을 고뇌하게 하는 사랑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사랑의 정점이 남 여 간의 사랑인 바, 남 과 여의 관계는 상대적이면서도 서로를 가늠할 수 있는 탐색의 관계가 아니며, 높낮이를 잴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 서로의 차이를 비교 평가 분석할 수 있는 반대적 개념의 관계는 더욱 아니다. 남과 여의 관계는 서로 끌어안고 조화를 이루는 관계이며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바탕으로 스킨쉽을 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남 여 간의 사랑에 있어 어떤 목적이나 수단이 개입된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사랑은 우리 인간에게 절대적 가치여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의 남과 여의 관계는 그런 숭고한 사랑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게 왜곡되어지고 있는 풍조가 날로 확산되어가고 있음을 보면서 그저 마음 한 편이 아려 옴을 느낀다.


 


 신혼여행에서 이혼을 결정하는 젊은이들의 이혼률 증가, 좋은 결혼 상대를 고르기 위해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따지는 풍조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남자를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아닌 돈으로 보는 여성들의 사고가 있는가 하면 마찬가지로 여성을 사랑의 대상이 아닌 단순한 욕망을 채울 수 있는 하나의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남성들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미 30여 년 전에 외쳤던 심수봉의 절규는 그저 막연한 사랑의 외침이 아니라 우리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절대적 사랑의 가치를 호소하는 것이었으며, 과거 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외침으로 우리들 가슴에 아직도 여울지고 있다.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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