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신문 선정



제2회 영광문화상 수상자 1인 창무극의 창시자 공옥진



세상사람들이 영광촌년이라고

하지만 나는 영광이 좋다.

40여생을 살았고

여기서 죽는 날까지

노래도 허고 춤도 추고

동네 아짐네들이랑 산나물,

칡뿌리 캐면서 살라요.

요즘 들어 고향을 등지고

멀리 떠나들 가지만, 맘 편하겄소,

고향은 좋은것이요! 살기좋은 영광!

공옥진이라도 꿋꿋이 지켜갈라요...







■영광이 낳은 국악인

영광이 낳은 국악인으로서 한국의 전통적인 소리에 춤 /재담 /몸짓을 가미한 연극의 일종인 창무극의 창시자이며 그것을 해학과 풍자로 승화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기쁨의 도가니로 빠뜨려 버리는 한국판 천의 얼굴을 가진 명인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공옥진 여사.

공옥진씨의 한판놀이는 솔직하고 천연덕스럽고 익살맞고 재미있다. 고통스러운 삶의 몸짓이 춤으로 표현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게도 울게도 한다. 그녀의 삶이 그렇듯 공옥진의 춤은 몸짓과 표정에도 꾸밈이 없다. 인간의 껍질, 고통과 슬픔의 껍질들을 과감하게 벗어 버린 그녀의 1인 창무극은 솔직하면서도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돈 때문에 팔려간 인생

1933년 판소리의 명창 공대일 (남도 지방문화재)씨의 4남매중 둘째로 태어났고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그때부터 아버지에게 창을 배우기 시작해, 10세 전후에 최승희 단체에 들어갔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아버지 공대일씨는 소리와 춤에 재주가 있는 딸을 국제적으로 이름난 최승희 밑에 두면 훗날 유명해지리라는 생각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징용가게 되 집안의 어려운 살림에 최승희가 준 돈이 도움이 됐고, 그 밑에 가서 하녀노릇을 했으니 팔려간 셈이라는 것.



■병신춤의 명인

병신춤의 명인이라 부를 만큼 병신춤을 재주로 피워냈고 더불어 원숭이, 퓨마등 동물을 모방한 춤까지 추고 있어 전통연예인이면서 예술적 표현력에 왕성함을 보이는 창작인이기도 하다. 곧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모든 재주들을 감고 있어 심청전, 흥부전 등을 일인극으로 엮어 노래와 춤, 연기를 모방춤으로 이끌어 낸다. 한 평생을 묵힌 술처럼 그녀의 예술은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그렇기에 그녀의 공연은 언제나 많은 관객을 운집시켰고 그녀의 공연에 그녀도 울고 관객도 울고 관객도 웃고 그녀도 웃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명인이지만 그녀의 삶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의 억척스런 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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