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복목사/ 사랑의교회






  기독교의 성경은 구약(예수님이 오시기 전 기록)과 신약(예수님이 오신 후 기록)으로 나뉜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전과 율법 중심으로 생활을 했다. 모든 유대인들은 적어도 일년에 세 차례는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유대인들의 자유를 없애기 위한 규정이 아니었다. 사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사랑해서 꼭 보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도 기독교의 규정들을 내 맘대로 살고 싶은데 그것을 억압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정의 울타리가 가정의 참 의미를 모르고 싫은 사람에게는 규제가 된다. 아이들은 “왜 밤 늦게 돌아다니면 안 되느냐?”고 항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부모의 사랑의 표현이다. 그래서 가정의 울타리는 사랑의 표현이고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어막인 것이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반드시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살 것을 명령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도록 하신 것이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는데, 성소는 제사장들이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으나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차례 대속제일(7월10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성결케 하고, 다리에 끈을 묶고 두렵고 떨림으로 들어갔다. 만약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대제사장은 죽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갈 수 없기에(들어가면 그도 죽으므로) 끈을 잡아 당겨서 주검을 끄집어냈다. 그래서 대속제일 전 날에 대제사장은 어쩌면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기에 가족들에게 유언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처럼 거룩하고 영광스런 분이다. 아무도 함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심지어 예수를 지극히 잘 믿은 사도들이라도 하나님을 뵈올 때는 죽은 자처럼 땅에 엎드러졌다.


 


  그런데 이런 거룩한 하나님이 계시는 예루살렘의 성전에 기원전 586년에 바벨로니아 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불에 타고 무너져버렸다. 어떻게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계신 데 그럴 수가 있을까? 답은 하나다.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떠나버린 것이다. 왜 그럴까? 열왕기하에서 그 답을 제공하는데, 바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오도록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끝내 거부했다. 그러므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이었던 것이다.


 


  신약 시대에도 헤롯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다. 그리고 대제사장도 있었고, 율법학자들도 있었다. 형식은 다 갖추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 세례 요한은 성전이 아니라 유대광야에서 나왔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성전 청결작업을 해야만 했다. 너무나 죄악으로 가득했기에 하나님이 계실 수 없어서다. 신약에서의 성전은 성도의 몸이라고 고린도전서 6장 9절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우리 몸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다. 그러므로 얼마나 거룩해야 하는가!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이 더러운 탐욕으로 가득한 곳에 계실 수 있겠는가!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이 세상 것으로 찌든 곳에 계실 수 있는가! 그런데도 오늘날 예수 믿는 자들이 성전인 자기 몸을 더럽히고 있다. 회개해야 한다. 거룩한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교회들은 사람들만 있고, 하나님은 없는 헤롯 성전과 같은 곳이 되지 않도록 항상 회개의 청결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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