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송헌 채동명/ 태창당한약방

저는 몸이 불편한 것이 첫째 한이요. 四男 四女를 두어 최근까지 畢婚은 했으나 큰 교육이 뜻대로 안돼 대성 못한 것이 둘째 한입니다. 참으로 교(敎)자(子)난(難)이였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여식들이나 손자, 외손들은 좀 英敏한 편이니 불행 중 다행으로 자(自)위(慰)합니다. 배움이 적고 힘이 약하니 어느 모임에서도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답니다. 英國에 호킹박사의 말에 의하면 장애인은 머리는 밝으나 틈새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살아온 것이 虛送새월인가 浪慢放從인가 과연 나는 무엇을 해 놓았으며 무엇을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일을 했는가 이제 지난날의 삶을 참회와 반성을 하면서 음덕을 많이 펴지 못한 것이 셋째 한이랍니다. 지금 77세에 부끄럼을 무릅쓰고 총 재산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재산은 지금 약방을 경영하고 있는 건물 영광읍 백학리 381-18번지와 영광군 대마면 복평리 산70번지 임야 약9백 평이 있고 자식도 삼형제는 답 열마지기 정도씩이고 둘째는 답 두마지기 정도이고 四兄弟住宅은 거의 20평짜리 적은 아파트 정도이지요. 그렇다고 돈도 참으로 없습니다. 거짓말이라구요? 주민등록증번호까지 기록하고자 했으나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이 없어서 이만하렵니다. 비록 富貴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살아온 것만도 天佑神助와 先塋님들의 감(感)조(照)와 여러 선, 후배 어른님들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사료하면서 깊이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이런 몸으로 1950년부터 1980년까지 자전거를 30년을 탔고 그 후 15년을 오토바이를 탔고 1997년 여름부터 장애인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항시 걸어다닐 때도 자전거, 오토바이를 탈 때도 너무 많이 넘어져 무릎을 다쳐 부어가지고 방에서 움직이기 어려울 때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측다리는 전혀 힘이 없이 따라만 다니니까요. 2002년 봄에 等級을 받고자 모 병원에를 가서 진찰을 하는데 허리와 우측둔부 무릎 세 곳을 근 이십여장 撮影을 하고 과장님께서 필름을 판독하시면서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활동을 하십니까? 하고 놀라시면서 뼈가 연결되고 근육이 감싸주어야 움직이는데 환도뼈가 가늘고 닳아져서 늘어져 있으니 덜렁 덜렁한 상태에서 다리를 끌고 다니시다니 참으로 의지력이 대단하십니다.” 하시면서 애착한 마음을 가지시드라구요. 그 후 2급을 받았으나 어떤 惠澤을 본다던지 결코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급수를 말한 것은 그만한 重症이며 그 만큼 고통 속에서 어렵게 살아왔다는 겁니다. 혹 넘어져서 상처가 나더라도 남이 볼까 두려워 얼른 일어서 비켜서거나 돌아서지요. 동료와 어디를 가도 나는 먼저 나가 빨리 가면서 땀을 쭉 흐르는데 다른 분은 나를 위하여 서서히 걷는데도 항시 뒤떨어지니 미안 초조해지면서 다음은 참석하기가 싫어진답니다. 그래도 또 너무 參與가 없으면 고립될까 두렵답니다. 그러나 가급적 외출이나 번거로운 출입은 극히 삼가하지요. 혼례 상례에도 웬만하면 인편으로 전합니다. 인사시 잘 넘어 지거든요. 그래서 出入이 적은 고로 원근에 아는 친구가 적습니다. 원래 비위치레를 못한고로 참으로 난감할 때도 입술을 깨물고 참아야 했지요. 그런 고난속에서도 1961년도에 동양의약통신대학 1년을 수료, 1974년에 한방침구학회 1년수료, 1973년 대마중학교육성회장 2년, 1991년도 장애인협회영광군지회장 4년6개월, 2000년11월에 세 번째 중국 북경에 가서 국재침구수평고시 A급 합격증을 받았고, 2001년 4월부터 부득이 광주전남종친회장 장학회장 4년을 역임했습니다.
선고의 뜻을 받들어 부담없는 침 시술을 생활화하다보니 제가 운영하고 있는 태창당한약방은 약방이 아니라 침방이 되었고 침을 놓아 부자가 된다하니 빈 소리라도 듣기가 매우 좋더군요.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것이 아닙니다. 침은 동양삼국의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구한 전통 민간요법이면서도 잘만 시술하면 通陽活血하고 急驚이라든가 삑극 捻挫등은 신기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병통치는 절대 아닙니다. 대게 산후풍증 퇴행성 관절 골다공증 등 증세이기에 시술 후는 반드시 병원에 가셔서 따뜻한 물리치료를 하시라고 권유한답니다. 그러나 약 드시라 권유는 않습니다. 반드시 약을 드시는 것이 원칙치료이나 대개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이기에 부담없이 편안하시게 해 드립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더 많이 아프다 하십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가슴이 철렁하답니다. 침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또 어떤 분은 술을 들고 오셔서 전번 아내가 이러이러해서 대효를 봤다면서 감사의 뜻을 전할 때 의원의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이 삶의 낙으로 생각하면서 저에게 停年이 없기에 앞으로 주어진 임무로 알고 聖業을 生活化하면서 마음을 비우겠습니다. 비록 쉰다 해도 집에 앉아 글 쓰고 술 마시고 시조나 읊으고 하는 것은 노년에 娛樂으로 여가를 선용할 뿐이지요. 勤儉 節約을 원칙으로 삼고 操心스럽게 살아가면서 넉넉치는 못해도 男子의 끼가 살아있기에 없어도 있는 듯 한답니다. 어느 친구가 술 한잔 들자 해서 나가면 내가 먼저 계산을 합니다. 또 그는 친구이기에 이해합니다. 그 옛날 50년 전에는 乞人이 많았지요. 그 걸인은 대개 生活力이 不足한 자들이기에 거의가 不具인이였고 또 건강한 자도 굶주리면 걸식하는데 게으른 사람이라고 호통치는 고로 일부러 장애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 자도 혹 있었지요. 그런 현실을 보고 살아왔기에 저는 없어도 있는 듯 깨끗이 沐浴도 자조하고 머리도 자주 감아 빗고 餘裕는 없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청결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돈이란 제목을 쓰면서 나 개인의 삶을 쓰다 보니 頭緖와 條理와體系가 없어서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읽어보신 여러분의 관용과 이해와 아량으로 살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