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도 한결 부드러워진 9월 4일 12시, 동교동 삼거리에 있는 재경영광군향우회 사무실로 향했다. 영광군민 7만2천여명, 재경향우 13만 여명, 약 20만 여명의 영광인들의 한마당 축제인 제25회 영광군민의 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모처럼 시간을 냈다. 송하성 회장, 이은행, 이춘신, 김옥자 부회장, 오세길 총무이사 등 70여명의 향우들이 향우회 사무실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고향길에 나섰다. 고향 하면 언제나 가슴부터 설렌다. 누렇게 익어 가는 나락들을 창밖으로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 모쪄서 모심고 김매고 나락 베고 나락 묶어서 등짐하고 나락벼늘을 쌓고 홀테를 발로 밟아서 탈곡하던 일 등이 모두의 눈빛에 어리는 듯 했다. 다행히 나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런 일들을 많이 해보면서 자라났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소주잔이 몇 순배 돌자 노래가 나왔다. 술이 들어가니 말도 술술, 노래도 술술 나왔다. 특히 송파구 석촌호수 부근 서울놀이마당에서 판소리 강사로 있는 김명섭 선생이 가져온 진도아리랑은 가사가 51개나 되어서 처음 듣는 것이 많았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임시 판소리 강습회가 열렸다. '햇볕이 좋아서 빨래를 갔다가 총각 낭군 통사정에 돌 베개를 베었네' '남이야 서방님은 자가용을 타는데 우리네 서방님은 내 배만 타누나' '목냉기 갈보야 몸 단장 마라 돈 없는 내 청춘 다 늙어간다.' 목냉기는 법성 해변 포구마을 이름이다.

저녁 7시경 영광실내체육관에 도착하니, 야외 특설무대에서 KBC 예술단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오후에 해룡고에서 KBS 전국노래자랑이 있어서인지 인파가 대단히 많았다.

실내체육관에서 영광군 출향민의 밤이 만찬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부산, 서울, 광주, 목포 등 전국에서 온 향우들과 영광의 기관장, 유지들이 만나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안부를 묻는 정겨운 자리였다. 야외 특설무대에서 벌어진 읍면대항 중창대회에 재경향우 1개팀도 참가했다. 모두들 노래수준이 아마추어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추풍부를 비롯해서 조운 시인의 시조에 곡을 붙인 석류, 파초 등의 노래가 널리 보급되어 영광군민의 애창곡이 된 것은 정서순화와 문화예술의 씨 뿌리기로 생각되어 기뻤다. 밤 늦게 까지 많은 군민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킨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스포츠와 문화예술의 활성화는 신체의 단련과 단결심 고취, 정신의 풍요와 애향심 고양을 통하여 지역사회의 역동적 발전과 활성화에 퇴비 같은 거름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애쓰신 모든 분들께 향우의 한사람으로서 감사와 존경을 올린다. 이번 행사의 캐치프레이즈를 '대화합과 문화군민 위상정립'으로 내세운 것도 지극히 적절하다고 본다.

자정이 넘어서도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고, 노래방을 찾기도 하고, 고향집을 찾기도 하고 태정호텔에 투숙하는 향우들도 있었다. 나는 노모님이 홀로 계시는 대마면 월산부락 고향집에 가서 잠을 청했다. 아침 마당에 피어있는 붉은 장미꽃을 보며 청소를 하고, 어머님과 집뒤안 동백꽃을 남겨두고 다시 영광읍으로 향했다.

법성포 가는 길목에 있는 공설운동장에는 읍면 선수단과 군민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기념식에 이어서 군민의 상, 행남 효행상, 농어민대상, 요진 어린이선행상 등이 시상되었다. 오후에는 축구, 배구, 육상 등 23개 종목의 체육경기와 문화행사가 읍면 대항으로 펼쳐질 예정이었다.

향우들은 12시경, 버스에 올라 불갑사 입구에서 보리밥 점심을 먹고, 군남농협 쌀보리 공장을 견학하고 영광농협 태양초 고추공장을 둘러보았다. 농업의 기계화, 자동화 현장을 고향에서 보는 일은 의의있고 기쁜 일이었다. 6·25 사변때 시신이 산을 이루었다는 백수 깟봉을 지나 그림같이 아름다운 칠산바다 푸른 파도 밀려오는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가 홍농 원자력발전소에 도착했다. 수산물, 소금, 젓갈대축제가 열릴 염산 설도항을 못 간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원전 홍보관에서 핵폐기물 관리사업과 지원사업을 알리는 홍보비디오를 보고 원전 직원과의 열띤 공방도 있었다. 나는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일부러 물어보았는데, 많은 향우들이 우리 고향 영광에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다. 나도 반대한다.

원전만 있어도 영광원전이 영광굴비를 죽이고 있고, 온배수로 인한 어민피해, 핵방사능 사고와 오염이라는 인식과 이미지로 인한 영광 농수산물의 판로 개척애로 등 직·간접적인 피해가 많은데, 한술 더 떠서 핵폐기장까지 설치된다면 이제 '영광하면 굴비가 아니고 원전과 핵폐기장'이라는 이미지가 고착되어 버릴 것이다. 30-50년의 수명이 지나면 원전 자체도 하나의 거대한 핵폐기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영광원전은 이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하면서, 원전 증설을 반대한다고 얼마전 영광신문에 글을 실은바 있다. 나는 원전에 관심이 많기에 몇 년전 영광원전 내부시설을 본적이 있고, 지난 8월에는 울진 원전을 방문하여 내부시설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법성포 쌍용굴비 공장을 견학했다. 굴비제조과정을 보는 것으로 좋은 일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정열과 사랑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고향은 어머니이다. 고향은 흙과 피(조상)가 있는 인간의 눈물겨운 뿌리이다.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고 달려가고픈 영원한 뿌리이다. 우리 서울 향우들은 그리운 영혼의 뿌리를 머지않아 다시 찾아갈 날(추석)을 기다리며, 그리움과 추억과 사랑을 가슴 가득히 담고 제 삶의 터전으로 흩어져 갔다.

우리 영광인들에게 영원토록 하늘의 축복이 가득하리라 !

김 윤 호 (시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영광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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