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농민 1천274명 한자리에..
남한: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문예단,기자단 등 674명
북한 : 조선농업근로자동맹회원 600여명

가까이 있어도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 여겼던 북한을 가게 된 것은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꼭 통일을 이루리라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남한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그리고 북한의 조선농업근로자동맹이 주최한 "6.15남북공동선언관철을 위한 남북농민통일대회"가 북한의 금강산 김정숙휴양소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남한의 674명과 북한의 600여명의 농민 등 총 1,274명의 남북농민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인데 우리 영광지역에서는 영광군농민회의 이하영회장과 박지수조국통일위원장, 김용만영광읍회장 및 정정옥군서면회장과 사회단체의 대표로 영광사회운동협의회의 최은영회장, 영광청년회의소(JC)의 정용안회장, 천주교영광성당의 이준형신부와 필자(영광신문 김성덕기자) 등 총8명이 참석하게 되었다.

지난 6월25일의 단오날에 '남북농민 통일단오놀이'라는 명칭으로 2천여명의 남북농민이 모일 계획이었으나 가뭄으로 고생하던 북측 농민들의 사정으로 인해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 거의 반으로 축소된 규모로 이번 행사가 진행되어지게 된 것이다.

연기를 거듭하면서 금강산관광을 책임지고 있는 현대 측과의 여러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고 숙소 등의 여러 문제가 나타났지만 남북농민들의 만남 그 자체를 중요시하는 가운데 어렵고 힘든 남북농민들의 만남의 장은 드디어 열리게 되었다.

남한에서의 출발은 속초항에서 정해져서 영광의 출발팀들은 16일 저녁에 출발하여 광주·전남의 팀들과 합류, 함께 속초로 가기로 결정되었다. 점점 날짜가 다가오고 곧 출발할 시간이 다 되어갔지만 "또 다시 연기되어지지 않나"하는 마음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무 문제없이 여러 사람들의 격려와 축하로 간단한 환송식이 농민회 앞 공터에서 펼쳐졌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끝으로 통일의 염원을 담고서 드디어 영광을 떠나 북한으로 향하는 여정은 순탄하게 시작되었다.

영광의 팀들은 광주·전남의 팀들과 합류하기 위해 광주역으로 향했고 도착한 광주역에는 환송을 나온 여러 단체에서 제작한 프랑카드 문구가 북한 방문을 실감나게 하였다. "통일의 쟁기질 하러 가시는 농민형님들 환송해요"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합시다"등등

여러 사회단체들의 환송과 함께 간단한 출정식 후 속초를 향했다. 밤 10시 30분부터 시작된 속초행 전세버스는 줄곧 쉬지 않고 통일의 기운을 가득 담은 듯 달렸고 다음날인 17일 아침 7시경 강원도 낙산 해수욕장에 도착하였다.

마지막 한국을 떠나기 전, 광주·전남 농민들이 낙산사 입구에서 한자리에 모여 통일에 대한 기원과 북한에서의 주의할 점 등을 전해 듣고 남북통일의 선두에서 농민들이 앞장설 것을 다짐하였고 속초항으로 집결하였다.

속초항에서는 전체인원의 출정식이 이어졌고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서 우리를 북한으로 옮겨줄 '현대 설봉호'에 발을 실게 되었다. 배 안에 오르자 방북교육이 시작되었다. 출발하기 전 두 차례의 교육, 차안에서 이동중의 교육에 이어진 또 교육이다. 북에 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설봉호에서는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는 객실 배정이 안되어서 선상의 상점과 갑판, 강당 등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덧 북한에 가까이 가게 되었고 '해금강이다'는 어떤 누군가의 말에 솔깃 모두가 멀리보이는 육지를 바라보았다. 사진찍기에 바쁜이들 사이로 멀리보이는 해금강이 북한 땅을 처음 보는 나를 감격(?)하게 하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후 .....

이제부터는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하는 안내원의 말에 모두들 긴장하기 시작했고 사진기를 감추기 시작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북한배 한척이 보인다. 북한기를 달고 있고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문구가 배 정면에 새겨져 있다. 배에는 몇명의 선원들이 있다. 하나같이 어려 보이고 군인같아 보이기도 하다…,

그리고 몇명이 우리측 배로 옮겨왔고 얼마후 배는 떠났다.

잠시후 고성항에 도착하였다. 저녁이 다되어 깜깜한 가운데 하선을 시작했다. 세관을 지나 미니 버스를 타고서 '온정각'이라는 우리가 주로 머물 곳으로 향했다. 얼마후 알게 되었는데 '온정각'이며 우리가 잠을 자게되는 숙소 모두 우리나라의 '현대'에서 만든 곳이라는 것이다. 약간은 아쉬웠다. 북한에까지 와서 고작 남한의 건물과 남한음식과 시설의 연장이라니, 하지만 북한에서 처음 맞는 밤은 무엇인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맑은 밤하늘에서 아주 쉽게 찿을 수 있는 샛별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있다는 것이 나를 더욱 놀라게 하였고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 남과 북의 똑같음을 연상하게 하였다.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들었고 다음날은 기대와 함께 일찍 일어났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피곤함은 잊어버린 듯 했다. 북측 농민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말이다.

숙소에서 식사가 준비된 온정각까지는 10여분 동안의 차량이동이 계속된다. 어젯밤에는 보지 못했던 기찻길이 보이고, 멀리 도로도 보이고, 주변의 마을들이 눈에 들어왔다. 군인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듯한 아저씨, 책가방을 들고 학교를 가는 어린 꼬마숙녀, 까까머리의 까무잡잡한 어린 녀석, 모두가 새롭게 보였다. 양쪽으로 철조망이 쳐져있어 아쉬움이 있었지만… 얼마를 가니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단으로 모여 사는 듯했다. 기와집들은 모두가 같은 모양들이고 하나같이 회색 빛이다. 철길을 따라 이동하는 아이들과 작은 오솔길로 단체로 움직이는 무리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손을 흔들어 보이면 같이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아이도 있고 멍하니 쳐다보는 아이도 있고 못 본 척 하는 아이도 있다. 가지각색이다.

주변의 경관은 새햐얀 돌들이 더욱 아름다움을 더하게 한다. 돌산인 듯 싶은데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보아왔던 모든 것들이 모아져 안에서 울컥하는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듯하다. '똑같은데...'.하는 마음과 함께, '왜 분단되어 살아야 하나?' 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아침식사시간에는 모두가 이동 중에 보았던 북한의 풍경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 '김정숙휴양소'라는 곳으로 옮겨 공식행사를 하게 된다. 드디어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그저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듯 하다. 아침식사를 한 '온정각'의 바로 옆에 위치한 '김정숙휴양소'는 북한에서는 좋은 곳으로 이름난 곳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휴식을 취한다고 하니, 그렇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이곳도 우리나라의 현대가 30년 동안 임대했다고도 한다. 아뭏튼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남측 농민들이 이동을 위해 모였고 드디어 입장을 시작했다. 북측의 농악대들이 먼저 나와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는 프랑과 함께 길놀이를 통해 반겼고, 북측 농근맹의 대표팀들이 먼저 나와 뜨거운 포옹과 악수로 환영했다. 한반도기를 앞세우고서 남북한 농민들이 하나둘씩 섞이면서 한반도 깃발을 펄럭이면서 기쁨 속에 입장하였으며 취재진들의 후레쉬들은 쉴 틈 없이 터졌고 북, 장고, 소고 등의 농악소리와 함께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행사장의 정면에는 "6.15 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북남농민통일대회"라는 대회 명칭이 새겨져있다. 입장식 후 한반도기가 게양되면서 시작된 행사는 "열열히 환영한다"는 북측 사회자의 말과 "우리민족은 조상 때부터 하나였다"는 남측 사회자의 말로 이어졌으며 "오늘 만남의 감격이 반드시 조국통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대표자의 말에 박수를 보내고 남북한 대표단들의 각종 인사말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어서 남북한 팀들의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민요가 주요행사의 틀이었다. 문화공연은 '반갑습니다, 고향의 봄, 각설이 타령, 옥류금 연주, 부채춤, 장고춤 등의 춤과 노래, 각종 연주 등으로 참석한 남북한 농민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하였다. 이후 점심시간에는 '김정숙휴양소'의 바로 옆에 우거진 송림 사이로 전 농민들이 옮겨 시군별로 나누어 남측과 북측팀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광주·전남 지역은 평양시와 연결되어 영광군에서 참석한 이들도 5명의 북한 농민들과 함께 식사의 시간을 가졌다. 북한 농민들의 실상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이곳저곳에서 많은 질문들이 던져지기 시작했고, 우리들이 농민들의 대표로 온 것처럼 그들도 대표로 왔고, 일은 공동으로 하고, 연애보다는 주로 선으로 결혼하게 되며, 남한의 도움도 받았다는 것 등 개인들이 알고 싶어하는 많은 것들을 얻는 듯 싶었다. 한잔 한잔 점심과 함께한 술은 북한산 맥주로, 색깔만 더 진할 뿐, 우리의 맥주와 거의 흡사했고 도시락의 밥맛도 우리나라의 그것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반나절인데 모두가 이곳저곳에서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또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은 다만 헤어져 있었을 뿐 우리 민족이 하나임을 새삼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식사 후에는 본격적인 남북농민통일대회가 시작되어 남북농민이 섞여서 자주와 단결 두팀으로 나누어서 경기를 치루었다. 씨름과 사람 및 물건 찾기 경기, 윷놀이, 휘둘리는 줄넘어 달리기, 밧줄 당기기 등의 경기 모두 참석한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특히 밧줄당기기 즉 줄다리기에서는 밧줄이 끊어져 버려 남북 농민 모두가 어이없어 하면서도 박장대소 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경기는 자주와 단결팀 모두 똑같이 우승자가 되어 끝났고 다음날에는 북한 농민들과 함께 하는 금강산 등반이 진행되었다. 천하절승이라고 표현하는 북측의 표현처럼 최고의 명산인 금강산을 남북한 농민들이 함께 손을 잡고 이끌기도 하고 끌어주기도 하면서 이야기 속에서 등반의 시간을 가졌다. 모두가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였고 어제의 친숙함이 더 이어져 이제는 사상이네, 체제네 하는 말은 온데 간데 없고 어제 술을 많이 먹었느니, 와보니 참 좋다느니 하는 등 친구들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듯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쉬움을 뒤로 한 채로 이제 북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구룡폭포와 옥류담 등의 금강산을 뒤로하고 폐회식을 위해 '김정숙휴양소'에 모인 농민들은 아쉬운 빛이 역력하였다. 이어 "남과 북의 농민들도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 실현의 주력군임을 선포하였고 남북농민들의 통일연대조직을 추진하겠다"라는 공동 보도문이 발표된 후 행사를 마감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모두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리고 한발 한발 움직이는데 …

한발짝에 눈물 한 방울, 또다시 한발짝에 또 한 방울, 그리고는 어쩔 수 없는 울음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을 서러움으로 표한다.

"우리 꼭 다시 만나게요, 예∼ 꼭이요∼""꼭 통일을 이룹시다" 눈물과 울음 속에 헤어짐의 발걸음은 마지못해 하면서도 어떻게든 옮겨졌다. 모두가 흘리는 눈물 속에…, 민족의 통일을 하루빨리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굳게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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