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세상의 모든 길에는 제 각 각의 의미와 이야기가 함축되어 져 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그 길은 그래서 많은 예술 작품을 통해 상징적이고 이미지 적인 수법으로 인간의 삶을 조명하기도 한다.


 1954년 페테리코 펠리니(Federico Fellni) 감독, 앤서니 퀸(Anthoni Quin). 줄리에타 마시나(Giulietta Masima) 주연으로 만들어진 이탈리아 영화 “길(La Streda)은 그 주제음악과 함께 우리 인생길의 한 단편을 그려낸 걸작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차력사 참파노에게 조수로 팔려간 소녀 젤소미나는 참파노의 조수이자 아내 노릇까지 강요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진정한 아내의 자리가 아닌 그저 참파노의 욕정을 해갈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그렇듯 참파노의 본능과 폭력에 혹사당한 그녀는 몇 번이나 도망가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이미 그녀는 참파노에게 운명을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거의 백치에 가까웠지만 타인을 진심으로 배려할 줄 알았고 영혼이 순진무구한 여인이었다.


 그렇듯 인간형이 전혀 다른 참파노와 젤소미나는 그들만의 방랑을 끝내고 곡마단에 입단을 하여 그곳에서 광대 일마토를 만나게 되는데 일마토는 젤소미나가 지닌 소중한 인간미를 참파노에게 일깨워 주려고 충고한다. 그러나 참파노는 바른 소리를 하는 일마토를 폭행하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때 사람들은 참파노를 버리고 도망가라고 젤소미나에게 말하지만 그녀는 신의 음성에 화답하는 길을 선택하고 참파노를 끝까지 기다린다.


 참파노가 출감하자 그녀는 참파노를 따라 다시 방랑의 길에 나서고 그러다 우연히 일마토와 다시 만난 참파노는 결국 일마토를 죽이고 마는데, 이때 젤소미나의 아름다운 영혼은 일마토의 죽음(참파노의 살인)에 충격을 받아 병에 걸리게 된다. 그러자 잔인한 참파노는 병든 그녀를 길 위에 버려두고 어디론가 홀로 떠나버린다.


 그로부터 5년 후, 어느 바닷가 마을에 다다른 참파노는 문득 귀에 익은 노랫소리를 듣는데 그것은 자신이 버리고 온 젤소미나가 늘 흥얼거리던 과거의 그 노래였다. 참파노는 그 노래를 부르는 여인으로부터 길에서 죽은 젤소미나의 소식을 전해 듣고 그날 밤 만취가 되어서 절규하며 그때 서야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지능이 모자란 젤소미나였지만 순수했던 젤소미나의 삶을 통해 일그러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통곡하며 비로소 참파노는 자신의 삶이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 젤소미나---- 아무리 목메어 불러도 트럼펫 솔로의 애절한 음색만이 허공에 길게 여울질 뿐 젤소미나는 이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길로 가버렸다.


 지난 일요일에는 백수 해안도로를 찾아온 차량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똑같은 ‘길’인데도 사람들이 유달리 그곳을 많이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의 빼어난 자연경관도 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곳에는 ‘노을’이라는 테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노을 전시관이 내용 면에서 그런대로 잘 만들어졌지만 우리 영광의 노을과 빛을 주제로 한 타지역과의 차별화된 ‘테마관’이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우리 영광에서 ‘길’은 단순한 생활의 편린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자연현상을 통한 학습과 관광 자원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차제에 관내 모든 지방도와 국도 주변에 각 구간별로 특성 있는 유실수를 심어서 계절 따라 풍성한 과일의 향기가 곳곳에서 풍기게 하고, 그 나무 이름을 따라 도로 명도 개칭하여 전국적으로 특색 있는 우리 영광만의 ‘길’을 만들어 가면 어떨까?


 버거운 삶의 무게만큼이나 젤소미나의 가녀린 육체를 짓눌렀던 두꺼운 겨울외투의 중량, 그 빛바랜 체크무늬에도 지금쯤 봄 찾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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