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 영광문화원 부원장



 지난 며칠 장안에는 기상천외의 괴담이 아닌 괴담이 아버지들의 술자리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지난 밤 젊은 친구들과 같이 했던 술자리에서도 어김없이 그 회자되는 문장은 술자리를 슬프게 만들었다. 술자리 도중에 집에 가겠다고 일어서는 친구에게 던져지는 문장은 “집에 들어가서 자면 죽는다. 안 죽고 싶으면 집에 가서 자지 말거라.”였으니 즐거웠던 술자리가 싸늘하게 분위기가 바뀌어지고 말았다.


 


 동네 후배 시켜서 자기 집에 방화하고 아버지가 살아서 달려들면 죽이라고까지 말을 했다는 열일곱 살의 존속 살인범 장아무개의 이야기가 갑자기 화두가 되어 삽시간에 술자리의 아버지들은 누구 한 사람 빠질 것도 없이 탓 아닌 탓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런 벼랑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는 변명은 한마디도 없이 죽어간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불에 타버린 집 이야기로만 일관되고 있었으니, 사건치고는 너무나도 무시시하여 누구라도 입 다물고 앉아만 있을 수 없을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 날 밤 아버지는 출장 중이어서 아들의 계획에서 빗나가게 되었으니 이건 정말 운명이었을까. 운명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가 아닐까.


 


 불에 타서 죽지 않았더라면 칼로 찔림을 당해 죽어야할 아버지가 그날 저녁 집에서 자지 않아 죽음을 면했으니 그 아버지의 살아남음은 불행이라고 해야 될지 행운이라고 해야 될 지 정말 가슴이 아플 뿐이다.


 


 범행의 동기는 부모가 든 보험금을 타서 강남에서 살고 싶어서였다니 십대의 가슴 속에서도 금전만능주의가 익을 대로 익어서 스스럼없이 돈만을 생각하고 어머니도 죽이고 아버지도 죽이고 누나도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이었으니 사람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오직 돈만을 꿈꾸어 온 열일곱 소년의 범행은 우리 사회가 올 데까지 왔다는 극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라 하겠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금전에 대한 고통, 그 고통을 고통으로 알고 부모라도 죽여서 그 고통을 해결해 보려는 열일곱의 소년이 저지른 사건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차피 이런 상황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부모와 자식 사이라면 모두가 지나칠 일만은 아니지 않은가.


 


 다시는 이런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되지만 누가 그 일에 장담을 하고 나설 사람이 있겠는가.


 


 내 일이 아니고 내 가정 일이 아니라면 나몰라라하고 앞만 보고 살아가는 시대에서 무슨 처방이 있겠는가마는 모두가 조금, 아주 조금씩이라도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사랑을 베풀어 비뚤어져가는 사회적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무시무시한 사건이 뉴스에서 터져 나올 때마다 저런 일도 있을까 하고 하지만 그 다음 사건은 더 크고 무시무시한 사건들이니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고 예측할 수 있겠는가.


 


 있는 자도 자중해야 되지만 없는 자는 돈에다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려는 삶의 자세를 바꿔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선 늘 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머리 맞대고 오순도순 사랑이 넘치는 대화로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식들이 밖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갈등을 품고 있는지를 가슴으로 느껴가며 금전이 아니어도 세상이 살맛나는 가족 분위기를 연출해 나가는 가정이 늘어간다면 더 나아가선 살맛나는 사회 환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날 밤 자기 집에서 자지 않아서 살아남은 아버지의 고통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일까 오히려 아내와 딸이랑 함께 죽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글을 맺지만 필자의 심정도 미어지는 까닭은 자식을 둔 아버지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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