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강위원/ 여민동락 원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어김없이 또 새 해 1월이 왔다. 모두다 장밋빛 희망을 설파하지만, 시절은 절망 한 가운데다. 주역에 “도(道)는 만물에 충만하지만 사람처럼 걱정하지 않는다.”(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는 말이 있던데, 오늘을 사는 필부필부에겐 걱정이 태산인 게 엄연한 삶의 현실이다.

원자력 수주니 경제성장 5%니 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이 땅 가난한 이들에겐 도통 남 얘기다. 집권하자마자 종부세 없애고 부자 감세부터 눈 하나 꿈쩍 않고 종횡무진 막나갔던 부자들의 정권인데,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일자리 창출 운운하지만, 애시당초 종부세 2조원이면 가난한 이들에게 일자리 10만 개는 족히 줄 수 있었는데도 막무가내 폐지해버렸던 정부가 절망 속 민중들에게 새 해라고 또 무슨 특별한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애먼 4대강 사업 한다고 사회적 일자리 없애고 복지예산 줄이는 정부다. 다 없는 사람들과 관련된 일이다. 결국 정부가 막나가면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들 살림부터 휘청거리는 법이다.

허망한 말이지만, 알고보면 다 부자를 꿈꾸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제대통령(?)에 충성서약한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의 선택이 원죄인 셈이다. 눈만 뜨면 부자정권의 횡포를 목격하고 사는 삭막한 이 시절, 철거당하고 목숨잃고 가게 문 닫고 일자리 잃으면서 모든 투표와 선거는 삶을 건 계급투쟁이라는 걸 이제는 알았을까. 가난한 백성들이 이 일차방정식을 분명히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누군가의 얘기가 딱 맞다.

결국 문제는 새로운 삶을 위한 근본적 성찰이다. 부자를 꿈꾸는 삶의 목표를 바꿔야 절망의 시절에 행복할 수 있다. 개발과 성장 그리고 부자신화만을 가르치는 이들의 포로로 살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나 고귀하다. 아파트 평수 늘리고 자동차 배기량 크게 하는 게 삶의 이념이 돼 버린 상황에선 언제나 우리는 돈의 노예다. 경제지상주의 세상이지만, 그 경제는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위기의 주범이지 않는가. 위기 때마다 간판 내리고 일자리 잃는 건 바로 우리, 경제의 미몽 안에서 순박한 꿈을 꾸고 사는 평범한 백성일 뿐이다. 그 때마다 절망하고 그 때마다 부자가 될 것이라고 다짐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돈 싫어하는 사람 누가 있겠는가만, 모든 사람이 다 부자 될 수도 없을 테고 돈만을 위해서 생을 바칠 순 없는 노릇이다.

‘경제라는 이름의 악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돈에 대한 신봉을 버리는 것’이라 했다. 차라리 자발적 가난을 선택할 일이다. 소유의 맹목에서 벗어나면 삶의 품격이 달라지고 새로운 충만과 풍요가 찾아온다. 좋은 차 샀다고 한 두 달 좋아하지만, 기름값 눈금에 민감하게 되는 게 현실이고, 평 수 넓은 집 샀다고 흐뭇해 하지만 난방비 아낀다고 방 몇 개는 아예 불도 안 땐다. 인구와 국토 대비 평균 6평 정도가 한 사람이 가질 적정크기란다. 그 이상은 다 남의 것일테다. 소유의 경제를 좇다보면 인생사 허망하기 짝이 없다. 가치의 삶으로 승부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 먹고 입고 자는데만 부족함이 없다면 그리 탐욕에 갇혀 다투고 살 일 아니다. 좋은 차 타고 넓은 집 갖는다고 다 행복한 게 아니다. 고광대실에 살아도 방 한 칸에서 잠을 자고, 진수성찬 아무리 풍족해도 하루 세 끼니 아닌가. 문제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새 해, 우리 새로운 결단과 각성이 필요하다. TV를 봐도 신문을 봐도 온통 ‘부자되세요’ 타령이지만, 앞으로는 가난하게, 더 가난하게 삶을 바꾸는 지혜를 얻었으면 한다. 지구촌 인구 14억명이 가난에 허덕이고 매년 1천만 명의 아이들이 굶어죽는다는 기사를 보고 내 사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의식주 문제없이 사는 소유만으로도 ‘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할 일이다.

모쪼록 모든 이에게 새 해 가난하게, 더 가난하게 서로 이웃집에 접시 돌려가며 마음엔 평화가, 얼굴엔 미소가 넘쳐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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