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빈사(瀕死)의 백조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5년 11월, 콜럼비아의 “루이스 화산” 대 폭발로 인해 연옥(煉獄)에 갇혀있던 소녀 “오마이라 산체스”는 “신이여!”를 외치는 전 세계인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아랑곳없이 60시간의 구조작업과 노력을 뒤로한 채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었다. 목숨을 건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녀는 구조대원들을 향해 “아저씨 힘 드실텐데 조금 쉬었다 하세요.”라는 단말마적 한마디를 건네주며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지구촌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었다. 그렇듯 세계인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그녀의 구조작업이 결국 허사로 돌아가자 국내의 모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빈사의 백조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라는 한 마디로 세계인들의 애원과 허탈함을 대변했었다.

죽음은 오늘 눈 앞에 있다.

비가 내리듯

원정에서 돌아와 집으로 들어가듯...

옛 이집트 시인의 시처럼 우리들의 삶 바로 그 앞에 정말 죽음이 있는 것일까? 죽는다는 것은 정말 먼 길 돌아와 집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일까?

25년 전의 콜럼비아 참사 이후 우리는 오늘 또다시 차마 뜬 눈으로는 직시(直視)할 수 없는 수많은 죽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신(神)을 원망한다.

신은 과연 어디 있단 말인가? 자신들의 삶을 신에게 의지하며 세상에서 가장 순박하고 선량하게 살아온 아이티인들에게 어쩌면 신은 이리도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인가? 어쩌면 이리도 혹독한 저주를 내린단 말인가?

“신이여 굽어 살피소서!” 지진 발생 직후 아이티의 폐허 속에 갇힌 죽음들을 바라보며 길거리에 꿇어앉은 한 여인은 목이 메이게 신을 불러보았지만 그들이 찾는 신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참사의 고통이 심화되면서 아이티는 더 이상 신을 부르지 않았다. 그 곳엔 신의 부재(不在)와 함께 생존 본능에 의한 처절한 몸부림과 아비규환의 절규만이 있었다. 그리고 도처에는 또 다른 “빈사의 백조”들만이 있었다.

지진 발생 후 10여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다리를 절단하면서까지 구조해냈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만 아이티의 13살 소녀는 25년 전 콜럼비아의 “루이스”화산 폭발로 인해 죽어간 또 다른 “오마이라 산체스”였다.

이제 더 이상 신에게 의지할 수 없는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세계 각국에서 보내진 구호물품과 구조의 손길이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 그러나 U.N의 구호물품인 생수병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가당찮은 책임성 운운하며, 한 모금 물을 찾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머나먼 길을 달려온 아이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비정함, 그 뿐만이 아니었다. 굶주림과 갈증과 불안과 공포심으로 인해 생명이 경각에 달린 그들의 약탈행위와 무정부주의적 행동 앞에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이유로 사살까지 서슴없이 자행하는 평화유지군의 만행이라니....

아이티는 지금 대자연의 힘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생존 본능과 절규만이 있을 뿐, 신도 없고 인간의 양심도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아이티의 참사 앞에, 신이여 응답하라! 인간의 양심이여!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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