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와 유럽 공동체 그리고 칠산바다-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4월은 잔인한 달 얼어붙은 대지 위에 라일락을 피워내고...”

 대자연의 생명력이 넘쳐나는 계절이기에 4월은 잔인하다. 겨울잠을 자는 듯 자기 존재의 본질을 자각하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영혼을 자연의 섭리는 자꾸만 흔들어 깨우려고 한다. 그렇듯 모든 생명활동이 넘쳐나는 계절이기에 그 본질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려는 인간들에겐 4월이 잔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격적인 봄의 향연을 열어가는 대자연의 순리 앞에서조차 현대문명의 속성에 갇혀버린 인간 의식의 부재(不在)와 세계1차 대전 후유증으로 인한 유럽인들의 정신적 황폐를 암시한 시(詩), “황무지” 속에 내재 된 엘리어트(T.S Eliot 1888-1965)의 세계관은 발표 당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던 유럽 공동체 정신에 기반 한 것이었다. 이미 1700년대 “유럽 통폐합을 통해 유럽을 구원하자”고 주장했던 밀 워드(Aian S Milward)의 외침에서부터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국내 평화를 기반으로 국제 평화를 견인해 내기 위한 전쟁의 배제와 국가간의 연대(연합)로부터 점진적으로 합중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力說) 했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사상과, 모든 정치적 조직은 물론 권력 구조인 국가를 부정했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는가 하면, “유럽 내 관세를 폐지하고 국제적으로 연대를 해야 한다”는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하며 자신의 조국을 향해 “프랑스는 죽고 변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 유럽으로 확대 되어야 한다”라고까지 주장했던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 1802-1885)가 있었고, 연방주의를 주장했던 상호주의 철학자 프르동(Pierre-josepr Proudhon 1809-1865), 범 유럽운동의 창시자 칼레르기, 세계일원주의의 코스모폴리탄을 거쳐 1900년대 초반 민족주의의 비판과 함께 “국경 없는 지중해가 유럽을 여는 에너지다. 유럽 문명의 정신적 문화적 기초인 지중해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발레리(A.P.T-jules Valery 1871-1945)대에 와서는 유럽 공동체에 대한 요구가 절정에 달했었다. -발레리의 그 주장은 지중해 연안국에서 배제된 세력을 양산하는 배타적 한계가 있었고, 유럽 통합과 대동아 공영권을 빙자한 나치와 일제의 얄팍한 전쟁 명분으로 악용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러한 한계 속에서 세계대전까지 치른 후에도 유럽은 공동체 구축을 위해 유럽식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드골 대통령과 함께 프랑스 경제의 현대화를 추진했던 장 모네, 패전국 독일의 회복을 위해 유럽 통합을 역설했던 아데나워, 각국의 통화 주권을 포기하고 급기야는 통화 동맹을 체결한 콜 수상과 미테랑 대통령과 대처 수상, 그 외에도 많은 시인, 소설가, 철학자, 정치 지도자 등이 포함된다.

 오늘날 유럽공동체의 결과가 있기까지는 오랜 세월 각 국가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 드러나지 않은 원동력은 물질의 통합 이전에 인간 본질의 자각에 의한 평화주의와 양보의 사상이었다. 그러한 사상의 정립이 발레리의 요구처럼 “대자연의 섭리를 무언으로 가르쳐주는 지중해를 통한 동질성(인간 본성)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엘리어트의 “황무지”를 통한 역설(逆說) 또한 이에 다름 아니다. 아직도 유럽 공동체가 넘어야 할 산은 많이 노정되어 있지만 그들은 이미 양보와 평화주의를 바탕으로 인간 본질을 자각해가고 있기에 그들에게 4월은 이제 더 이상 잔인한 달이 아니다.

 우리는 유럽 공동체의 정치적 외형적인 것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의 본질을 배워야 한다.

 변함없는 흐름 속에 강인한 생명력을 잉태한 칠산바다는 오늘도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연출해내며 누구에게나 차별과 경계를 두지 않는 자연의 순리를 말해주고 있는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리 저리 갈라지는 우리의 4월은 언제쯤 그 잔인함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현실적 경제적 가치, 그보다 훨씬 중요한 근원적이고도 보편타당한 가치가 우리들 내면에 존재하고 있음을 자각해 낼 수 있는 우리의 4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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