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선거는 전쟁과 일맥상통 한다. 당선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는 많은 후유증을 낳는다. 후보들의 노력을 지켜보면서 즐기면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가 된다. 선거 후유증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갈등과 불화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 라고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글쎄다. 그렇게만 되면 오죽 좋을까. 고개가 저어 진다. ‘축제’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해야 고개가 끄덕여 질 것 같다. 선거를 좀 아는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표현을 부정하지 않는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 전쟁과 선거의 속성이다. 이기면 많은 것을 얻고 지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도 전쟁과 선거는 일맥상통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겨야 하지만 선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당선만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는 많은 후유증을 낳는다. 당사자는 법적 제재를 받아 낙선되느니 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다. 유권자가 잘 못 뽑으면 국민과 지역, 국가의 발전을 저해한다. 지역간·집단간·개인간의 갈등과 불화를 낳는다.
우리의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이기 보다 ‘전쟁’ 처럼 치러진다는 것은 아직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군부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진정한 민주화는 아니다. 독재 체재 시절에 비해 자유를 조금 더 얻었을 뿐이다. 선거가 축제 처럼 치러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를 축제 처럼 치를 수 있느냐는 유권자에 달려 있다. 입후보자들은 당선을 위해 지역이나 집단간의 갈등을 부추기더러도 유권자들이 거기에 휘말리지 않고 선거를 즐기면 된다. 말로는 ‘심부름 꾼’을 자처하면서도 권력을 탐하는 입후보자들의 술수에 놀아나지 않고 나를 대신해 살림을 꾸려갈 적임자가 누구인지 ‘정답’을 맞추면 된다. 서로 ‘정답’이 자기라고 호소하는 노력을 지켜보면서 즐기면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가 될 것이다.
선거 후유증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갈등과 불화다. 집안간·동문간·지역간·이웃간에 서로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다고 해서 불화하고 갈등을 빚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현상이다. 선거의 주체, 즉 주인공은 유권자다. 입후보자를 주인공으로 착각하고 그들이 당선을 위해 갈등과 불화를 부추기는 술수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다고 서로 갈등하고 불화 하는 것은 스스로를 입후보자의 당선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8명을 선택하는 지방선거가 끝났다. 지역민들을 대신해 일을 할 ‘일꾼’을 뽑은 것이다. ‘일꾼’들이 주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 축제가 끝났다고 생각하자. 내가 ‘정답’을 맞추지 못했드라도 “자네 판단이 맞았네 그려” 하면서 결과를 받아들이자. 서로 생각이 달랐다고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를 주연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격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갈등과 불화는 서로 ‘낙점’ 받기 위해 경쟁한 후보들 사이에 하든지 말든지 주민들은 알 바 아니다.
‘일꾼’을 자처하고 나섰던 후보들도 진정으로 주민을 주인으로 섬기고자 했다면 결과에 승복하고 당선자는 상대를 위로하고 낙선자는 당선자를 축하해야 한다. 그래야 ‘주인’들의 마음도 편해지고 다음 기회에 “그 사람 괜찮더라”는 평가를 받아 당선의 영광을 안을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당선자들을 가려 걸러 내는 데 까지가 선거의 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