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짓밟힌 코리안 드림(Korean Dreem)

 며칠 전 우리는 뉴스를 통해 한 다문화가족 이주여성의 안타까운 죽음을 접했다.

 생전 처음 본 남편에게 이끌려 물설고 낮 설은 땅, 이역만리 머나먼 꿈의 나라(?) 한국으로 결혼이민을 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린 베트남 여인 탁티황응옥씨의 소식이었다.

 갓 스무살의 어린 신부였던 그녀는 한국에 도착한지 꼭 일주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남편의 칼에 찔려 ‘한국인의 꿈’을 접고 말았다.

 그녀는, 한국으로 시집을 오면서 부자나라(?)에서의 달콤한 결혼생활과 함께 고국에 남아있는 가난한 가족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결혼정보업체의 말만 믿고 배우자를 고르고 따져 볼 여지도 없이 한국인 남편을 따라 나섰던 그녀는 60년대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동생들을 가르치겠다며 도시로 식모살이를 떠났던 우리의 누이들 같은 심정이었을까?

 어린 딸을 한국으로 시집을 보내고 주위의 부러움과 함께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을 베트남 가족들에게도 그녀의 부음은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어린 신부는 물론 가족들에게마저 마저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었던 이 기막힌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분노가 치밀다 못해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쉬고 사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기 까지 했다.

 일주일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행복하게 잘 살게요.”라며 안부 인사를 했다며 피눈물을 흘리던 친정어머니는 울다가 지쳐 실신까지 했다고 한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한국으로 시집을 가겠어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에요.”라며 한국이민을 결심했다던 그녀, 무참히 깨져버린 한국인의 꿈을 접은 체 싸늘한 주검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녀의 영정 앞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사람으로서 사죄와 위로의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친다.

그들만의 책임인가?

〔피고인만을 지탄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 대책으로 우리 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남녀를 그 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지난 2007년에 있었던 후안 마이라는 베트남 부인을 살해한 한국 남편에게 재판관이 선고한 판결문의 일부이다. 후안 마이 역시 남편의 구타로 갈빗뼈가 18개나 부러져 죽은 같은 베트남 출신 여인이다. 41세의 남편은 음주 등 폭력전과가 6범이나 되었으나 결혼 중개업체의 농간에 넘어간 후안 마이는 당연히 이 사실을 몰랐다.

그녀는 결국 결혼생활에 성실하지 못한 남편과는 살 수 없다며 친정으로 돌아 갈 것을 결심하고 짐을 꾸리는 던 중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1천만 원을 결혼중개업소에 지불하고 열아홉의 아내와 결혼하였습니다. 나이 먹은 남자가 아내와의 나이차이가 부끄러웠고 남들이 자신을 병신같이 보는 것 같아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니라 돈을 주고 사온 노예로 취급했음 직한 남편의 최후 진술이었다.

결혼 이민자들의 처절한 현실, 무모하리만큼 돈벌이에만 집착하는 결혼 중개업체를 비롯하여 이를 방치하고 있었던 국가기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을 해왔던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이 어린 신부의 죽음 앞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문화만의 강요는 않된다

뒤늦게나마 정부에서 대책을 강구하고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여가부를 비롯하여 복지부, 행안부, 외통부, 법무부, 문광부 등 정부 각 부처에서는 다문화가족을 위한다며 서로 경쟁을 하 듯 지원정책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낮이나 내려는 전시성 행정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나마 사건이 터진 후 국제결혼과 관련한 법령을 강화하여 불법 결혼중개업체를 단속하는 등 강력히 대처를 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꾸었다고 하니 다행이랄 수 있겠다. 이젠 다문화가족에 관한 모든 정책과 지원을 일원화 하여 교육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족의 특성상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주여성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줌으로써 가난으로 인한 배우자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한국에 조기 정착을 할 수 있도록 범 정부차원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하려는 예비 신랑,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 모두가 결혼 이민 여성들과 그의 2세들이 피부색이 다른 주변인이나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의 하나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배우자가 될 총각들은 후진국 여자를 돈을 주고 사왔다는 속물근성을 벗어 던져야 하며, 문화가 다른 그들에게 아직도 가부장적인 유고문화가 뿌리깊이 박혀있는 우리의 문화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비록 후진국이지만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상대방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배우자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다문화사회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역시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다문화가족들의 눈물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사회를 압박해 올 때 후회를 해봐야 이미 때는 늦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