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전 전남문인협회장

 자기 집의 경사에 남을 초대한다는 것은 우리조상들의 자랑스러운 풍속이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이웃집에서 벌어지는 애경사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했었다. 간장이나 된장, 달걀 또는 곡식 등을 싸가지고 가서 마음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또는 안팎으로 해야 할 일들을 거들어 주는 사람 등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일들에 함께 했었다.

 그런 아름답던 조상님들의 숨결이 지금엔 급기야 스스럼없이 세금고지서라고 할 만큼 무거운 이름으로 전락될 정도의 초대장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받는 이도 보내는 이도 본래의 마음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일요일만 되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이집 저집에서 보내온 청첩장의 행사에 참여 할 수가 있을 만큼 그 건수는 알게 모르게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날마다 직장을 찾는 우편배달부의 무거운 가방 속에는 옛날 그 정겹던 아기자기한 편지는 찾기 어렵고 청첩장이나 유통회사발행의 납부고지서 등으로 가득한 실정이다. 사무실에서 어떤 사람은 청첩장을 받아 들고 보낸 이가 도무지 누군지조차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는가 하면 엊그제 술좌석에서 한번 만난 사람인데도 청첩장을 보내 왔다고 한다. 이런 일이 문제라는 것이다.

 청첩이란 적어도 몇 년쯤은 정을 나누고 살아온 사람들끼리의 오고가는 마음이어야 하는데 선거판에서 세 불리기라도 하듯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사람들을 다 끌어들여 보내고 보니 받은 사람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얼마 전에 신문의 독자란에 어떤 독자가 이런 투고를 했었다.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적어서 축의금을 현실화하면 교통 혼잡과 시간 절약을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정말로 좋은 얘기이다. 그러나 너무 야속한 것 같고 정이 없을 것 같아 충분히 공감은 하면서도 이렇게 되면 우리 조상들의 본래 의지와는 너무도 상반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모를 일이다. 얼마가지 않아서 이 독자분의 제언이 현실로 돌아올 날이 뻔할 것 같아서이다.

 이런 일들은 너무 함부로 남발해서 보내는 청첩장에서 비롯되는 이야기일 것 같아 필자의 생각으로는 일차적으로 보낼 사람을 정선하자는 이야기이다. 보낼 사람의 주소를 뽑을 때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봉투에 옮길 때 또 다시 생각해서 받는 사람이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초대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쁜 가운데서도 꼭 가야 할 자리 오고가는 일까지도 없어진다면 우리들 사회의 삶의 의미는 어떻게 되겠는가? 갈수록 이웃과 멀어지고 친척과 왕래가 없어지는 현실 속에서 교통 혼잡과 바쁜 일상을 밀치고 행사장 찾아가서 오랜만에 잊었던 얼굴도 만나고 그래서 잠깐이나마 서로의 지친 삶도 이야기하면서 우리 이행사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있었을까 하면서 청첩장이나 초대장의 새로운 의미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로 바꿔나가도록 해봤으면 어떨까?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한다.

 슬픔을 겪는 일은 예정되지 않은 까닭에서인지 그런 저런 이야기들이 없지만 기쁜 일로 초대되는 일은 사전에 예상되는 일이어서인지 그 초청의 한계가 지나치다는 이야기를 예서 제서 자주 듣는다.

 예상되는 일이니만큼 사전에 얼마든지 정선을 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니까 초대장을 보낼 적에 상대방의 얼굴이라도 떠올리면서 써보라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초대된 사람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하게 될 것이고 참석치 못한다 하더라도 정의 표시를 어떻게든지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이루어진다면 계좌번호 운운하며, 아니 세금고지서가 어쩌니...하는 등의 비아냥거림은 없어지지 않을까.

 올 가을 기쁜 일을 계획한 사람들이라면 바로 지금 나 자신부터 청첩문화 정선에 앞장을 서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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