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율산 그룹의 신화는 정치적 음모와 재계의 견제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나산· 해태· C&은 물론 금호마저 날개가 꺾였다. 다른 재벌 그룹들은 불법· 부정이 드러나도 쓰러지지 않는데 우리지역 기업들은 버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쓰러지는 지역 기업들을 보는 지역민들의 가슴에 찬바람이 들었다”

  ‘율산 그룹’은 70년대 후반 재계의 신데렐라 였다. 고흥 출신 신선호 등이 74년 자본금 100만원으로 율산실업 이란 오퍼상으로 출발 했다. 김우중의 대우와 함께 중동 수출 붐을 몰고 와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한 몫을 했다. 전화기 1대와 책상 하나로 시작한 율산실업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벌어 들였다. 하지만 79년 4월 부도로 인해 무녀졌다. 14개 계열사에 8천여명이 뛰는 ‘그룹’으로 성장한 율산의 부도 이유는 아직도 석연치 않다.

  젊은 패기와 아이디어로 급성장한 ‘율산’의 부도는 정치적 음모와 재계의 견제 때문이란 것이 정설이다. 78년 정·관계에 추석 선물로 돌린 자사 패션 브랜드 ‘밤빔’ 티켓이 ‘사건’으로 터졌다. 이어 청와대 비서실과 연관된 신선호 회장 납치 사건이 터진다.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호남의 젊은이들이 5년여간 쌓아올린 신화는 무너지고 말았다. 호남인들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지역민들은 ‘전라도 기업이기 때문에’ 부도 처리 됐다고 믿었다. 명절에 선물 돌리지 않은 기업이 없던 시절이다. 왜 율산의 선물만 언론을 타고 적지 않은 관료들이 옷을 벗어야 했을까.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자금을 지원하며 독려했던 사람들이 엄청난 수출 실적을 올린 기업의 일시적 자금 부족에 구제금융을 외면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호남 기업’이기 때문에 견제를 당하고 결국 정치적 음모로 인해 무너졌다는 것이 ‘정답’이다.

  대표적 호남 기업이던 해태와 함평 출신의 안병균이 일으킨 나산그룹의 부도 역시 호남인들에게는 쓰라린 기억이다. 영광 출신 임병석의 C& 그룹도 잘나간다 싶더니 금융위기로 워크아웃 처리되고 이어 금호그룹마저 날개가 꺾였다. 이제 전라도 태생의 대기업은 씨가 마른 셈이다. 다른 재벌 그룹들은 불법· 부정 행위가 드러나도 쓰러지지 않는데 우리 지역 기업들은 버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율산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날개가 꺾인 호남 출신 인재들이 내 주위에도 적지 않다. 해태와 나산· C&· 금호 등에서 일하던 인재들도 풀이 죽어 있을 것이다. 지역 기업들이 죽어 가는데 지역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균형 발전은 국가적 과제다. 호남은 낙후를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균형 발전 정책 자체가 호남의 낙후를 고착화 시키는 불균형 정책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두각을 나타내는가 싶으면 쓰러져 버리는 지역 기업들을 보는 호남인들의 가슴에는 찬바람이 들었다. 겨우 명함을 들이미는가 싶다가 사라져간 C& 그룹이 부정한 방법으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비자금을 만들고 로비를 했다며 연일 시끄럽다. 수사가 시작되나 싶더니 임병석 회장은 구속됐다. 수사 하고 구속돼야 마땅하지만 섭섭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다른 대기업들의 사건이 터졌을 때와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삼성이나 현대· 한화 등에서 터졌던 과거의 사건은 물론이고 거의 같은 시기에 터져나온 태광과 비교해도 C&은 번개처럼 빠르고 가혹한 칼을 맞고 있다. 그 칼은 구 여권, 즉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실세들을 겨누고 있다. 민주당은 정치보복의 수단으로 이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 탄압을 위한 또하나의 사정이라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정치성 없는 수사에 정치적 비판을 말라”고 목청을 높이고 선진당은 “가혹한 수사”라고 비판 했다.

  올 겨울은 춥더라도 내년 봄에는 우리 지역 연고 기업들이 화사한 꽃을 피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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