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v
“좌우의 균형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선생을 좌파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세상에 알린 선생은 분명 ‘시대의 지성’ 이다. 선생은 본인의 희망대로 광주 5·18 민주 묘역에 묻혔다. 광주 정신과 함께 리영희 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좌우의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적 권력이건 진실을 은폐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쓰는 목적으로 삼고 일관 했다. 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 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 할때의 상태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이렇게 갈(喝) 했다. 촌철살인(寸鐵殺人) 이다.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짧지만 이보다 더 명쾌하게 제시할 수 있을까. 선생의 이 말에는 선생 자신의 사상과 삶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이러한 선생을 향해 ‘좌파’니 ‘주사파의 대부’니 하며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음흉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만이 선생을 계속 비판할 것이다.
선생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를 ‘시대의 지성’ 이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진실이 은폐되고 독재가 판을 치던 시대에 숱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인으로서, 교수로서 해직과 투옥의 가시밭길을 뻔히 보면서도 진실을 찾아내 단호한 어조로 밝히는 것이 자신의 소명인 것처럼 살았다. 학문에 매진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에 알린 선생은 분명 ‘시대의 지성’이다.
선생께서 타계 했다. 슬프다. 안타깝다. 우리 시대의 지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세상은 선생의 올곧은 말과 글이 절실한 데…. 선생께서는 이승의 모든 고난을 뒤로하고 편한 세상으로 가셨다. 하지만 음모와 진실의 은폐가 판을 치는 세상이 계속되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야속하다.
개인적으로 선생은 나의 대학 시절 은사다. 선생의 강의 시간은 매번 ‘마지막 수업’이라는 비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정보부의 퇴직 압력과 대학의 버티기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선생께서도 늘 마지막 수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커다란 칠판에 중국 대륙의 지도를 빨리 잘도 그리셨다. ‘민심’을 강하는 단호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선생은 한마디로 단정한 분이다. 말씨에서 걸음걸이 까지 ‘단정’ 그 자체인 분이다. 그렇다고 딱딱하고 지루한 분은 결코 아니다. 어느 교수님보다 즐거움을 주셨다. 작고 깡마른 체격이지만 총도 잘 쏘고 운동도 잘한다고 뽐내며 어린아이 처럼 우리와 씨름 하기를 좋아하셨다. 잔디밭 씨름에서 20여명의 체격 좋은 학생들을 거뜬히 눕히셨다. 정말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키워주신 분이다. 우리는 특별한 애정과 존경의 표시로 ‘교수님’이 아닌 ‘선생’으로 호칭 했다.
우리 시대 진실에 눈뜨게 한 사표 리영희 선생.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누구 못지 않은 열정을 보이고 숱한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선생께서 이제 광주 5·18 민주 묘역에 묻히셨다. 평북 삭주가 고향이신 선생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영령들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서 광주에 묻히기를 소망하셨을 것이다.
선생님 민주 영령들과 함께 마음 편히 씨름도 하시고 무등산도 자주 오르십시오. 우리는 나라를 위해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광주 정신’과 함께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리영희 정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