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교수
1958년 영광출생
광주대학교 부동산금융학과 교수, 경제학박사(전남대)
광주광역시 지방재정계획심의위원
광주발전연구원 기금관리위원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대체로 ‘전반적인 삶의 질이 만족할만한 상태’로 정의한다. 미국 경제학회에서 ‘행복의 경제학’이란 주제로 몇 편의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는데,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환경․ 다른 사람과의 비교․ 소득․ 취업 상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등을 분석한 결과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고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이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라는 사실만은 확인해준 셈이다.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다. 사회주의의 붕괴로 거의 모든 나라가 자본주의경제체제로 편입되면서 개방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선진국의 자본유입이 급증함에 따라 개도국은 나름대로 경제성장을 달성했으나 빈곤은 여전하며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UN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하루 2달러 미만의 생활을 하고, 고소득층의 소득이 세계총소득에서 점유하는 비율은 증가 했다. 반면 저소득층의 점유율은 감소했다.
또한 개도국의 외채부담은 계속 누적되고 있으나, OECD 국가들의 해외원조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협력과 정책조정을 필요로 하는 인류 모두의 문제다.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더 많이 도와주고, 빚을 탕감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성공한 나라인 미국이 국민총생산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데 있어서 가장 인색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코피아난 UN 전 사무총장). “세계화는 가난한 나라에는 부담을 지우는 한편 부유한 나라에는 오히려 부를 늘려주고 있다. 채권국들은 최빈국들의 외채를 적극 탕감해야한다”(고 교황 요한바오로2세). 두 글귀를 인용하면서 상생의 지혜를 다시 한 번 상기해본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직장을 가져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직장 잃고 가정이 붕괴되어 삶의 터전이 상실된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없다. ‘눈높이를 낮춰라’가 구직자들의 행동강령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님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문구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등 구직자가 겪는 취업 스트레스도 다양하다. 어떤 조사결과는 구직자 60% 이상이 해외이민을 가고 싶다고 답했다 한다. 그만큼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며, 정부와 기업의 취업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업은 우선적으로 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며, 일자리 창출은 경제가 꾸준히 성장해야 가능하다. 즉, zero-sum이 되지 않으려면 인구증가율을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이 달성되어야 한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경쟁력이 구비되어야 하며, 품질 디자인 등의 비가격경쟁력 뿐 아니라 가격경쟁력도 갖추어야 한다. 가격경쟁력을 갖추려면 물가가 안정되어야 한다. 이처럼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모두 실업과 연계되는 정책 목표이지만, 실업을 줄이는 고용정책이 우선순위의 정책과제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경세제민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면서 상생의 지혜가 발휘되기를 기대해본다.
근대국가 초기의 절대군주는 “짐은 국민의 제1의 공복(公僕)이다”며, 국민복지라는 미명하에 국민생활의 구석구석까지 간섭하는 경찰국가를 만들었다. 현대의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결부되어 사회복지를 추구하고 있다. 북유럽이 일찍부터 발달된 복지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도 제34조에서 복지국가건설을 천명하고 있다. 영미(英美)에서 80년대 생산적 복지라는 말이 나온 것은 복지제도를 너무 잘 만들어 놓으니까 일할 사람들이 실업수당이나 타먹고 노는 문제가 발생하는 과거 복지제도에 대한 비판선상에서였다.
우리도 근로무능력자에 대한 단순생계지원 중심의 ‘생활보호제도’를 실시하여 왔으나 97년 IMF 이후 근로능력 있는 빈곤 인구가 급증하는 등 사회문제가 확대되면서 기존의 제도가 사회안전망으로서 한계가 있음을 인식, 생산적 복지 차원에서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전환, 시행하고 있다. 근로능력에 관계없이 빈곤선 이하의 모든 저소득층에게 최저생계비 수준의 생활을 보장하되, 근로능력자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자활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제도의 핵심 내용이다. 시행 후 수급자 확대, 수급자 급여수준의 향상, 자활 지원제도의 합리성 등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부양의무자 기준, 재산기준, 소득기준 등 수급자 자격요건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최저생활이하 가구 모두가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최저생계비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의미한다면, 그 수준은 아직도 미흡하다. 뿐만 아니라 실직빈곤계층의 탈 빈곤을 위한 일자리창출과 자립을 달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정부는 시혜자가 아닌 공복의 입장에서 그 혜택이 빠짐없이 두루 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제도 정비와 행정의 체계화, 전문화 등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상생의 지혜가 요구된다.
수도권집중과 지역격차 수준에 대한 논란은 주요 관심사이지만 관점에 따라 상이한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비수도권 입장에서는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지역에 인구의 48.3%, 지역총생산(GRDP)의 47.7%, 대학의 39.3%, 의료기관의 51.1%, 금융기관의 67.8%가 집중되어 있어 수도권집중이 심각하다고 해석하는 한편, 수도권입장에서는 48.3%의 인구가 사는 지역에 지역총생산은 47.7%에 불과하고 대학은 39.3%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IT산업의 확장으로 인한 경제구조 변화라는 급류를 타고 있다. 정보화와 글로벌화 경향으로 세계 각국의 지역정책도 새로운 방향전환이 모색되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선진국들은 지역의 글로벌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의 행정구역을 광역단위로 개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8년 1월에 5+2 광역경제권의 설정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지역발전방안을 발표하였다.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대경권․ 동남권의 5대 광역경제권과 강원도․ 제주도의 2대 특별광역경제권을 설정하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함으로써 지역발전을 촉진할 계획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경제에는 라이프사이클(life-cycle)이 있다. 발생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가 그것이다. 경제체제도 이러한 라이프사이클을 거치며 목축사회에서 농업혁명에 의해 농업사회(8000년)로,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에 의해 산업사회(200년)로, 정보혁명에 의해 정보사회(1950년대부터)로 변천하였다. 정보경제도 2020년대에는 바이오 경제로 넘어간다고 하니 기술의 변화 속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기술변화는 지금까지도 있었지만 그 속도는 직업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나의 기술체계 내에서 직업생애를 마무리 할 수가 있었다. 즉 한번 배운 교육과 지식만으로 정년 때까지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직업생애 동안에 몇 번씩 기술변화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편 출생률의 저하와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우리나라의 연령구성은 변화가 예상되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직업생애기간을 연장시킬 것이다. 급속한 기술변화와 직업생애기간의 연장을 감안한다면, 행복을 누려야 할 권리가 있는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저축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장래의 능력향상을 위한 교육 및 연수비용에 대한 투자 등 능력을 위한 저축과 고령자가 되어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젊을 때의 노동시간의 일부를 건강 증진에 투자하는 시간의 저축이 그것이다. 연공서열의 완화와 전직의 유연성 증가로 기업에 의한 능력의 저축유인은 저하될 것이기 때문에 개인 스스로 능력․시간의 저축을 충실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해를 보내며 행복한 삶의 경제적 필요조건에 대한 개인, 지역, 계층, 국가 등 각자의 역할을 통해 상생의 지혜가 발휘되기를 기대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