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일제와 박정희 정권은 설날을 ‘구정’으로 격하 시켰다. 다행히 우리 민족은 ‘신정’이 아닌 ‘설날’을 지켜 냈다. 아쉬운 것은 가족 중심의 설이 돼버려 공동체 결속 기능이 약화된 점이다. 자녀의 손을 잡고 세배를 나서자. ‘품격’ 있는 인재로 키우는 교육이 될 것이다. 역사 교육과 함께 미풍양속을 되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설날이 코앞이다” 이 말을 쓰면서 우리말의 빼어남을 새삼 깨닫는다. ‘머지않았다’거나 ‘다가온다’ ‘며칠 남지 않았다’ 고 쓸 수도 있으나 ‘코 앞’ 이란 표현이 얼마나 맛깔스러운가! 이처럼 다양하고 맛깔스런 표현이 가능한 언어를 가진 민족이나 나라가 지구상에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제품으로 따지면 단연 세계 최고라 할 것이다. 이 자랑스런 우리말도 일제 침략으로 많은 ‘잡티’가 끼었다.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고 많이 걸러 냈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일제가 뿌려 놓은 ‘잡티’ 인지 모르는 채 쓰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구정’이다. 일제가 들어오면서 설날을 옛것으로 취급해 ‘구정’ 이라는 말로 격하 시켰다. 민족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 된다.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 이라는 단순한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모두가 고향을 찾아 아침에 차례를 올리고 새 옷을 입는, 민족적 일체감은 갖는 날로서 공동체의 결속이라는 기능과 의미가 있다.

   박정희 정권 들어서도 ‘근대화’ 라는 명분을 들어 ‘신정’과 ‘구정’으로 구분하고 ‘신정’ 쇨 것을 권장 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을 ‘구정’ 이라 격하 시키는 설움을 당한 것도 분한데 정권 차원에서 설날을 ‘구정’으로 격하 시키고 아예 없애버리려 했으니 얼마나 큰 잘못인가. 다행히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정서는 ‘신정’ 이 아닌 ‘설날’을 고집 했다. 고위 공직자들을 중심으로 ‘신정’에 한복 차려 입고 떡국 먹으며 세배를 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국민은 이를 외면했다.

  산업화· 도시화가 되면서 ‘귀성 전쟁’ 이라 표현 될 만큼 불편하고 힘들어진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하지만 ‘귀성 전쟁’은 우리 민족의 설날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의지다. 민족정기가 살아 있는 것으로 해석 돼 ‘귀성 전쟁’ 이 오히려 반갑다. 아쉬운 것은 설날의 공동체 결속 기능이 다소 약화됐다는 점이다. 모두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지만 가족 중심의 설날이 돼 버렸다.

  설날 아침 집안 세배를 마치고 아버지 손을 잡고 이웃 어른들과 일가친척 집은 물론 노인당에 까지 들러 세배를 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가는 집마다 맛있는 음식을 내와 하루 종일 배가 불렀다. 해거름에 집에 돌아오면 주머니도 세뱃돈으로 두둑했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해진다.

  일제의 말살 정책과 박정희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서 지켜낸 설날을 아름답고 즐거워 행복하던 우리 옛 설날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조금이라도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경쟁하느라 삭막해진 고향 인심도 다시 훈훈해질 것이다. 잦은 선거로 갈라 선 이웃과 다시 ‘사촌’으로 살을 부비며 살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을 법으로만 해결하려 드는 풍토는 사라지고 터줏대감의 준엄한 한마디 말씀으로 갈등이 해소되는 아름다운 고향 산천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번 설날부터는 ‘구정’ 이라는 말을 우리말에서 지워 내자.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 옛 풍습 되살리기에 나서자. 도시에서 자라 고향을 모르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동네 어른들께 세배를 나서자. 어른을 공경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품격’ 있는 인재로 자랄 수 있는 산교육이 되리라 믿는다. 사라졌던 우리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마찬가지로 사라진 우리의 미풍양속을 되살리는 것도 더불어 잘사는 데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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