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장애협 영광군지회장

  지나간 해는 항상 다사다난하다지만 2010년은 마지막까지 다사다난으로 이어져 세밑에는 폭설이 쏟아져 내렸다. 그 폭설은 끊이지 않고 연초에도 계속 이어졌지만, 아니 지금도 이어져가고 있지만 산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출근길엔 자빠지고 미끄러지고, 삶의 처절한 현장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끈질기게 퍼져가는 구제역까지 다사다난에 한몫을 하고 있었으니,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다사다난이 실감이 나는 한해였다고 보겠다.

  중부지방은 강추위가 남부지방은 폭설로 한파와 폭설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으나 구제역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같기만 하다. 어제 내린 눈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오늘 또 눈이 내렸으니 쌓인 눈은 애물단지가 되어 생활에도 큰 불편을 주고 있는 실정이란 것은 비단 도시 사람뿐이 아니고 시골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속도로나 국도 등의 큰 도로는 제설차량이 밤낮으로 가동되어 최소한의 소통에는 큰 불편이 없으나 그렇지 못한 길엔 쌓인 눈과 내리는 눈으로 한발 한발 건널적마다 여간 위험하지가 않은 실정이었다.

  그러는가 하면 어떤 집앞을 가노라면 깨끗이 치워져서 통행에 불편이 없는 곳도 있었다. 그런 곳을 지날때면 나도 모르게 그 집을 살짝 쳐다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혹시라도 아는 집일까 하고 문패라도 쳐다보기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잠시 쉬지도 않고 내리는 눈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저녁에 내린 눈쯤이야 아침에 일어나 집앞이라도 쓸어 놓으면 가족은 물론 지나는 사람마다 마음 놓고 걸으며 골목의 인심을 이야기할텐데, 너무 야속한 골목도 있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던 것은 골목길이나 집앞의 좁은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가족 중 한 사람만 마음먹고 빗자루 들고 나왔다면 얼마나 상쾌한 길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서 조심조심 눈쌓인 길을 헤치며 걷노라면 수십년전의 어느 겨울날 아침이 떠오르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 오늘은 내가 이웃집보다 더 일찍이 일어나 이웃집 앞까지 눈을 쓸어줘야겠다고 벼르고 나갔더니 우리집 앞까지 이웃집 형이 이미 쓸고 있지 않은가. 다행히도 내가 나갔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웃집형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보다 더 크고 힘이 센 형이었기에 미안함은 덜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눈이 내렸다. 나는 그날 아침엔 더 일찍 일어나서 이웃집앞까지 내가 먼저 쓸고 들어온 날이었다. 아버지께 칭찬도 들었지만 이웃집 가족들께도 칭찬을 들었다.

  이제 이런 일들은 옛날의 추억쯤으로 저 뒤로 물러났다. 오죽했으면 당국에선 내집 앞 눈쓸기를 법조항으로까지 만들어 놓았을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의무감을 부여하기 위해서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의 삶이 너무도 각박해진 것 같아서 서글퍼지기도 했다. 내 집앞에서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해버린 이웃이 생긴다면 얼마나 미안할까. 혹시라도 치워지지 않아서 그랬다면 더욱 미안함은 클것이 아닌가. 이제는 그런 일들이 잘못되면 법정으로까지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법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내 집앞은 내가’라는 희생과 봉사 정신을 발휘해보면 어떨까 하는 바램이다.

  퇴근길엔 소년들이 빗자루를 들고 골목길을 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옛날을 떠올려 보니 꼭 내 모습만 같아서 눈위를 걷는 내 모습이 즐겁기만 했다. 그쯤해서 새어나오는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는 더욱더 살맛나는 우리집 골목길처럼 온 동네가 다 그랬으면 하는 염원담긴 마음을 하얀 눈길 걸으며 열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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