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프리랜서

  4반세기쯤 전 서울에 살던 광주 출신 유력 인사의 상가. 물론 문상객들은 주로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여기저기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탄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중 어느 선배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호남, 대한민국의 영원한 마이너리티”라며 울분을 토하는 선배의 목소리에서는 단순한 비난을 넘어 뼛속까지 설움이 배어 있었다. 전라도 사람으로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생생히 전해져 왔다.

 호남의 소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신라가 3국을 통일한 130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남을 기반으로 한 신라가 3국을 통일 했으니 호남은 자연스럽게 ‘마이너리티’로 밀려 났을 것이다. 호남 소외의 공식적(?) 역사는 왕건의 훈요십조에서 시작 됐다. 훈요십조 여덟 번째 항 “차령 이남은 산세가 거구로 달려 역모의 기상을 품고 있으니 결코 그 지역 사람을 중히 쓰지 말라”다. 호남인의 소외를 국가 중요 정책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호남의 농업 자본은 공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라와 국민에게 가장 귀중한 식량 생산 기지로서 나라를 세우고 발전 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자원’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훈요십조’의 악몽은 정권에 의해 계속 됐다. 불행하게도 경상도 출신의 대통령들이 ‘호남 소외’를 정권을 잡는 데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박정희에서 전두환과 노태우에 이어 김영삼까지 경상도 대통령들은 호남 소외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 했다. 민주 투사 출신임을 자부하는 김영삼 대통령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경상도를 결집 시켜 정권을 잡았을 정도다. 호남의 농업 자본으로 일으킨 산업 발전의 과실은 정치에 의해 호남 소외와 낙후를 심화 시켰다. 어미를 홀대하는 것과 같은 불효요 역천(逆天) 이라 아니할 수 없다.

 메이저(주류)로 우대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마이너리티(비주류)로 살 수 밖에 없는 호남인들의 가슴에 멍이 들었다. 한이 서렸다. 객지에 사는 많은 호남인들이 본적을 서울로 바꾸고 살아간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호남인’ 이라는 사실이 취직에도, 출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현실적 판단이 그들로 하여금 본적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러려니 하며 잊고 살려 해도 호남 출신 기업들이 사라져 가는 ‘사건’들은 호남의 상처를 건드려 가슴을 후빈다. 멀리 가지 않고 이명박 정권 들어서만도 호남의 대표기업인 금호가 ‘죽을 지경’이 됐고 C& 그룹은 죽었다. 광주․ 전남 지역에서 손꼽히는 건설 업체들도 다 ‘죽었’다. 물론 기업 내부의 문제가 있어 생긴 일이다. 하지만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여건과 이들 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구가 정책적으로 살렸어야 했다.

 최근 일어난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호남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금호타이어 창업 공신인 박상구씨 일가와 광주 지역 건설업자인 박모씨가 대주주다. 금융감독원은 부산 저축은행 ‘사건’을 ‘부실’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현 정권의 ‘호남 죽이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죽이기’ 위해 오랫동안 지나치게 감사를 실시해 기업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고 지급 준비율(BIS) 기준도 의도적으로 낮추어 문을 닫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속내를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신빙성이 있다. 호남의 소외와 낙후는 남북 분단과 함께 대한민국의 갈등과 불화의 최대 요인이다. 선진국으로 국격을 향상시키는 데 풀지 않으면 안될 과제다. 메이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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