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 /광주 새사연 사무처장(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엊그제 5.18 민중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오월愛>를 봤다. 핏빛 진실로 역사를 기록했던 광주의 그 날을 '주먹밥'과 '공동체'로 재현하며 가장 낮은 곳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오월愛>는 기존 작품과는 사뭇 달랐다.
31주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해결된 화석의 역사처럼 오래된 옛이야기 같지만
오월 광주는 여전히 발포 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미국의 역할 등 가장 핵심적인 사실들이 1980년 5월 18일 그 날에 여전히 밀봉되어 있다. 그래서 아직 오월을 다룬 영화는 소중하다. 나아가 이 영화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무명씨'들을 통해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띄우고 있다.
<오월愛>의 표현처럼 5월 광주는 '주먹밥 공동체'다.
공수부대에 의해 고립무원의 지대로 전락한 광주에서 폭력과 공포와 죽음의 힘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려던 때에, 광주는 자신을 다 내어주는 ‘주먹밥 공동체’를 선택한다. 인류사 어디에도 이런 감동과 울림은 일찍이 없었던 터다. 시민들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상점 주인들은 팔 물건을 나눠주고, 쌀이 있는 집은 쌀을 가져와 주먹밥을 만들고, 심지어 자동차까지 자발적으로 동원했던 광주, 그것이 오월 광주의 힘이었다. 그랬기에 "도둑도 강도도 항쟁기간 동안은 한 마음"이어서 단 한 건의 범죄사고도 없었으며, 총에 맞고 칼에 찔려 신음하면서도 더 위급한 이들을 위해 병상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오월 광주는 그랬다. 오월 광주를 상징하는 주먹밥, 그 주먹밥은 군홧발에 맞선 무명씨들이 생명과 상생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만든 밥이었으며, 저항과 나눔과 자치의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대동 세상을 상징하는 밥이었다. 무명씨들의 곁에서 모든 두려움과 분노와 소망을 한데 모아 한솥밥을 지어먹으며 오월 광주를 사수하려던 공동체의 표상이 그 주먹밥이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오월 광주는 그렇게 ‘가장 완벽한 세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5·18정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큰 틀에서 3가지의 정신으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는 참여와 저항정신이다. 당시 거의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수부대의 야만적인 폭력에 굴하지 않고 하나가 되어 싸웠다는 점이다. 둘째는 대동 나눔 정신이다. 민중항쟁의 전 기간 동안 광주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위기를 가장 인간다운 삶의 협동심으로 대처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민족 민주정신이다. 항쟁 기간동안 광주의 시민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도덕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점이다.
이제 살아남은 자의 과제가 있다. 본인이 발을 딛고 사는 동네와 지역에서 오월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지켜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추모와 제사의 영역에서 이제 오월정신의 고갱이인 자치공동체의 정형들을 만들어가는 걸출한 후예들이 나와야 한다. 공수부대의 야만을 능가하는 시장만능주의의 폭력과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정치폭력에 맞서 참여와 저항의 정신으로 공동체의 정상성을 회복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 나아가 양극화의 극단을 살고 있고 비정규직이 870만 명에 달하는 야만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대동과 나눔의 정신을 어떻게 동네와 직장에서 조금씩이라도 정착해 갈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오늘도 오월 정신은 우리를 깨우고 있다. 역사의 전진을 위해 우리는 무엇 하나라도 바쳐본 적 있는지 오월의 넋들은 늘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