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언론인/프리랜서)

“혹시나는 역시나 끝났다.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청와대 회동 결과다. 영수회담이 아니라도 당연히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사안엔 합의 했다. 밀고 당기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안들은 서로의 입장과 원칙만 확인 했단다. 서로 ‘카드’가 없는 정상회담 이었다. 정치력 부족한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본 것 같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의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좀더 빨리, 좀더 자주 만나 국정을 논의 했으면 민생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결과는 뻔할 것이라는 생각이 교차 했다. 제 주장만 하며 싸우는 ‘평행선’ 정치에 신물이 난 터라 국민들이 깜짝 놀랄 협상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정치 ‘고수’ 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 것이다.

영수회담 결과는 기대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협상의 결과물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물 정치인 다운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각자의 위치와 입장만 확인한 만남 이었다. 결과가 뻔한 회담에 기대를 건 나의 정치적 안목이 부끄럽다. 화가 난다. 나 자신과 ‘영양가’ 없는 아침밥을 2시간 5분씩이나 걸려 먹고 헤어진 두 지도자에게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고 관심이 있는 국민이라면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얻은 것이 없느냐고 할 것이다. 최고의 민생대책인 일자리 창출에 내년 예산을 최대한 반영 하기로 합의 했다고. 또한 가계부채가 경제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으며 저축은행 피해방지책도 마련키로 했다고. 두 지도자와 양당(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영수회담의 성공적 결과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가지 의제는 영수회담이 아니더라도, 여·야간 정치 협상 없이도 정부가 당연히 내놓고 정치권은 군말 없이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굳이 영수회담 의제로 올린 것 자체가 정치적 ‘꼼수’였다는 의구심이 든다. 영수회담이 ‘영양가’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한 의제일 뿐 두 정상이 만나 밀고 땅기는 협상 끝에 어렵게 이끌어낼 성격의 사안이 아니다. 속된 말로 ‘자연뽕’으로 떨어지게 돼있는 사안인 것이다. 여·야 모두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저축은행 피해 재발 방지책을 요구했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가계부채도 마찬가지다.

정작 정치적 협상이 시급히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의 입장과 원칙만 확인하고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단다. 영수회담이란 최고 책임자들이 만나 무언가를 결정하자고 만나는 협상 테이블이다. 어렵고 지루할 수 밖에 없다. 국익을 위해 빨리 결과를 도출해야 할 사안들이다. 그래서 영수회담이 필요하다. 당연히 상대방과 주고 받을 ‘카드’를 가지고 만나야 한다. 그런데 어떠한 새로운 ‘카드’도 없었다.

한·미 FTA의 국회비준이 급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을 되뇌일 일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나 손 대표 모두 새로운 ‘카드’를 가지고 만났어야 했다. ‘카드’를 내놓지 않으려면 의제로 채택하지 않았어야 했다.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이어 받은 상황에서 한발짝도 진전시키지 못하면서 “국가 장래에 중요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정치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역시 대통령 깜’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손 대표의 ‘카드’도 아쉽다.

대학등록금 문제도 한·미FTA 문제와 다르지 않다. 인하와 함께 대학의 구조조정도 필요하다는 사실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추가경정 예산이라도 세워 국민적 욕구를 조금이라도 채워주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인하 시기와 폭 등 구체적 방안이 엇갈려 계속 협의키로 했단다. 국가재정법을 들어 추경 편성도 어렵단다. 그렇다면 뭐하러 영수회담 의제에 포함시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영수회담 자체에 서툴렀다. 정치력이 부족한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본 것 같다. 정적(政敵)인 오바마 대통령과 베이너 하원의장은 한가지 사안을 놓고 11시간 논쟁 끝에 협상을 이끌어 냈다. 또 사안이 발생하자 골프 회동을 했다. 미제(美製) 영수회담과 국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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