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칠산문학회장/영광신문 편집위원)

“자신이 태어난 고향(염산)이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팍재를 넘어갔던 사람들은 지금 사장 되고 회장 되고 높은 사람 되고... 다들 잘되었는데 그 알량한 전답 몇 십 마지기와 얼마 안 되는 재산에 발이 묶여서 못 떠난 우리 인생은 이렇듯 초라하게 늙어가니 지나온 세월이 그저 아쉬움뿐이네.”

“그러게 말이시.”......

80이 넘은 두 노부(老父)들이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한 토막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두 분 다 웬만한 도시의 재력가들 부럽지 않을 만큼 경제적 기반이 탄탄해서 보란 듯이 자식 교육 제대로 시킨 후에 한밑천씩 얹어서 분가 시키고도 여유가 있어서 별다른 근심 없이 말년을 보낼 수 있는 대비책이 마련된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하소연을 늘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이해할 수 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바로 소득 상승률이 기하급수가 아닌 산술급수에도 못 미치는 시골 살이의 상대적 빈곤감에서 오는 허탈함일 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상황이 그러 할진데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하루하루 생활고에 시달리는 절대 빈곤층과 서민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그들에겐 그 상대적 빈곤감조차 사치스런 것이라서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계층들이 우리나라에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OECD 회원국이며 G-20에 속하고 세계 열한 번째 무역 대국이란 현실적 용어들이 그 소외 계층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 판국에 정부나 국회가 하는 일들 이란 게 하나 같이 가난하고 허기진 사람들 호주머니 털어내는 정책 과 법을 만들기에 급급해있다. 부자 감세 정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로교통법이 형벌에 가까울 정도로 강화되면 그 법에 저촉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모르긴 해도 가난한 서민들이 그 대상일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있는 자들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과속을 하거나 법규를 위반 할 만큼 급하지 않을뿐더러 그럴 기회조차 별로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듯 도로교통법을 강화해서 기층 민중들의 허리끈을 옥죄면 과연 교통사고가 그만큼 줄어들지도 의문이다. 약사법 개정은 또 어떠한가? 의. 약 서로가 말로는 국민 건강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들 밥그릇 싸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뻔한 속셈이다.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입장 또한 가관이다. 이미 국민과 서민을 위해서 발의한 개정안인데도 밥그릇 앞에 똘똘 뭉친 양(兩) 쪽수들의 목소리에 밀려서 눈치 보기에 급급해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어떤 국회의원은 T.V에 나와서 “국민을 위한 일이기는 하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관계 당사자들의 입장을 무시해버릴 수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리는 모습이라니....세상은 그렇게 미친(美親) 사람들 중심으로 미쳐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서도 먹물들 위주의 북치는(北親) 사람들은 교묘한 민족주의 논리를 앞세워 거친 목소리로 자신들만의 정치적 기반 확충과 기득권이나 권리 주장 등을 해대며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양자 모두가 내세우는 명분은 하나같이 국민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특히 서민 대중을 위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대립각 속에는 국민을 위하고 민족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 이전에 민족 분열과 계층 간 분열이라는 양극화의 모순이 들어있고 그 모순 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하려는 계산된 것이면서도 묵시적인 거래 명세서가 숨겨져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미친(美親) 세상과 북치는(北親) 사람들의 적대적 관계는 하나의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 가치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국민들 눈치 안보고도 자기들의 몫을 나눠가질 수 있는 치졸한 상생(相生) 관계의 원리 때문에 양립(兩立)이 가능하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한다면 극단적 양극화 논리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급변해가는 정세 속에서 합리적 대안을 찾고 양보와 타협을 바탕으로 국민통합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있고 민족의 미래도 기대 할 수 있다. 나만의 논리 나만의 이념이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절대 가치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

“...오랜 세월 시(詩)와 의리(義理), 참된 세상 참 삶을 향한 우리들의 순수한 열정들은 소금처럼 변함이 없을 것이네.

인정(人情)이고 의리고 민족의식이고 모두 깡그리 말살되어가는 파국 직전의 이 막된 세상을 보면서 너무 오래 사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왕지사 버티었으니 ...중략...

우리들 마음의 고향 영광과 칠산바다 지킴이로서 뿌리가 튼튼한 민족시(民族詩), 부패한 조국의 방부제가 되어주길 부탁하네.”

서두의 두 노부와 같은 세대인 노 스승님께서 몇 일 전 보내오신 편지를 몇 번씩 되 읽어보며 그 따뜻한 정과 격려에 위안을 느끼면서도, 미친 세상에서 북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허덕이는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생각하니 한 편으로는 착잡한 마음속에 가슴이 아려 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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