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백수 해안도로, 칠산바다 저녁노을, 불갑사와 꽃무릇, 어염시초(魚鹽蓍草)가 풍부해서 붙여진 이름 옥당골, 굴비와 오백(五白. 쌀, 면화, 누에, 소금, 눈)의 고장,...등 화려한 수식어로 표현되는 것만이 영광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영광에서 태어나 영광에 살면서도 외형의 수식어 뒤에 숨겨진 진짜 영광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 영광의 전통적 가치와 외형적 유산들에 대한 수식어는 사실 세계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는 영광만의 지리적 특성과 독점성을 지닌 자연환경에 의해 발생되고 발전되어 온 것에 다름 아니다.
“어머나, 세상이 이토록 밝고 화려할 줄 몰랐어요”
이는 앙드레지드의 소설 “전원교향악”에 나오는 눈 먼 여자 주인공 “제르트뤼드”가 목사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눈을 뜨면서 세상을 처음으로로 대면하는 순간의 감정으로 던진 첫마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어쩌면 처음 보는 세상에 대한 감탄사가 아니라 “제르트뤼드”가 개안(開眼) 직후 바라본 세상에 대한 실망스러움의 비명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눈을 뜨지 못한 상태에서 꿈꾸었던 세상과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이 눈을 뜨는 순간의 밝고 화려함으로 인하여 모두 사라져버린 상실감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비명이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도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뜬 눈이었기에 오히려 여러 가지 화려하고 외형적인 것에 가려진 채 눈이 멀고 귀가 멀어서 그동안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던 진짜 영광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진짜 영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진짜 영광의 가치를 느낄 수가 있다. “제르트뤼드”의 눈 뜨기 전 그 마음처럼.
노령산맥의 끝자락인 태청산으로부터 장암산, 불갑산, 삼각산, 월암산에 이르기까지 영광의 맨 동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산들은 커다란 병풍처럼 둘러쳐져있고, 서쪽으로는 일망무제의 칠산바다를 품어안고 있다. 그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영광은 어쩌다 한두번 불어오는 샛바람(동풍)을 제외하고는 봄여름에 주로 불어오는 마파람(남풍)이나, 가을 겨울에 주로 불어오는 하늬바람(북풍)도 하나같이 늦바람(서풍)으로 바뀌어서 일년 내내 불어온다. 칠산바다의 따뜻한 숨결을 고스란히 품어오는 늦바람, 그 습도 높은 바람은 동쪽의 산들과 숲에서 만들어진 신선하고 청아한 산바람의 향기와 만나서 영광땅에 비를 뿌리고, 눈을 내리고..... 영광 땅이기에 가능할 수 있는 자연의 절묘한 현상 때문에 영광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작물이나 자생 나물과 약초들의 맛과 영양과 약효는 타지역의 그 것들과 견줄 수 없을만큼 탁월하다.
그대, 영광인이여!
요즘같이 달이 뜨는 밤이면 영광의 어느 바닷가에라도 나가보라. 칠산바다 아련한 수면 위로 은은한 빛을 뿌리며 홀로 밤길을 가고 있는 밤의 나그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밤의 정서와 함께 그대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칠흑같은 밤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염산의 갯벌 속에 자신의 몸을 맡겨보라. 혼자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식의 옷을 벗어버리고 전라(全裸)의 몸으로 그 갯벌위를 뒹굴어보라. 그러면 그 곳에서 그대는 아직 그대가 들어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느껴본 적이 없는 온갖 생명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더불어 원초적 삶의 숨결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며, 생의 충만함과 참사랑이 어우러진 영광만의 진짜 가치를 알게 되리니....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언제, 어느곳에서나 마찮가지겠지만 요즈음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사회적 정의나 대의명분은 넘쳐나도 개인적 진실이나 원초적 순수는 그리 흔치가 않은 실정이다. 우리 영광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회적 정의나 집단적 대의 명분에 의한 폭력이 개인적 진실이나 순수마저 짖밟아버리는 혼돈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통속적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원시성을 간직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어느 지역보다 많다는 사실이 진짜 영광의 가치로 살아있다. 이는 우리 영광사람들이 타지역 사람들에 비해 이성적 고찰이나 지적 능력이 뛰어나기때문이기보다는, 모든 생명체가 환경에 의해 지배 되듯이 영광만의 독점적인 자연환경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배태(胚胎)된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우리 영광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닐 수 없다. 태풍이 지나가면서도 함부로 앙탈을 부리지 않고, 비가 내려도 지나치게 범람하지 않는 축복의 땅 영광! 그 영광의 진짜 가치는 뭐니뭐니 해도 자연이 만들어낸 사람의 가치가 최고의 가치이리니, 그대 영광인이여! 그대 또한 영광의 자연 속에서 진정한 영광인으로서의 그대 스스로를 오늘 새롭게 느껴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