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탈핵과 대안에너지에 대한 견학을 위하여, 서울대 전 교수인 김정욱교수를 단장으로 한 운하반대교수모임, 원불교 환경연대, 천주교 정평 환경소위, 환경재단 등 20여명과 함께 지난 6월 28일부터 7월5일까지 6박8일로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주교회의의 지원으로 독일을 다녀왔다. 일본의 핵사고 이후 탈 핵발전 논의와 결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독일탈핵과 대안에너지로의 대전환 현장기를 5회 연재한다. 이번호는 포츠담 태양광 시민발전소에서 시민운동가 소피헤벨과 보봉지역의 알무트슈스트의 안내를 받아 재생에너지의 시민운동 활동에 대한 설명을 연재한다.
안전한 전력공급을 위한 17인 위원회 위원인 자유대학의 슈뢰이더교수, 지속가능위원회, 응용생태연구소, 독일최대의 환경단체인 분트 등의 전문가, 운동가 등을 면담하고 정책적인 부분들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정부정책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보기위해 포츠담 태양광 시민발전소와 보봉 지역 등을 방문했다.
포츠담 태양광 시민발전소
먼저 포츠담에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실험과 시민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전환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소피 헤겔을 만나 태양광 시민발전소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현장견학을 하였다.
소피 헤벨은 자기소개에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항상 에너지 문제, 기후변화 문제, 피크오일 등에 관심을 가졌다. 카셀대에서 전문적으로 '에너지 합리적 효율적 이용'에 대한 공부를 했다. 포츠담대학에서 10년 정도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에너지와 관련한 기술개발, 재생가능에너지 보급과 관련해 많은 펀딩을 하는데, 행정적인 일을 담당. 어떤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지출을 하고 관리·감독하는 것 등 지원금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다.
좀더 에너지 공급,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기여를 하기 위해 실용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포츠담에서는 주민과 함께 태양광 관련 시민운동가 등이 자원 활동 개념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사말과 함께 우리 견학단을 현장으로 안내해 많은 설명을 해주었다.
■주주가 얼마나 되었고, 은행에서 얼마나 융자를 받았는가?
□60명 정도 참여했고, 절반 정도 은행 융자를 받았다. 매우 큰 이익을 얻었다. 다음번 투자를 위해 두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같은 사람이 계속 투자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들이 참여할 수도 있다. 투자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모은다.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투자를 한다. 주주들이 대부분이 개인들이다. 포츠담, 롯 등에서 절대 못 본 사람들로부터도 투자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줄 때 자산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형태로 은행에서 차입하여 사업을 하고 있는가?
□태양광에 관련한 규제가 매우 높은데, 안전규제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것이 투자를 꺼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불이 났을 경우에 소방관들이 물을 뿌려야 하는데, 워낙 볼트가 높아서 감전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스위치는 무조건 달아야 한다) 그것이 1개에 5000유로씩 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투자가 점점 꺼려진다. 예전에는 그런 논란이 많았지만, 지금은 턴키(일괄방식)로 맡기니가 그 업체에서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 부분이 투자에 대한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긴 토론 끝에 전문적인 소방수들이 원래는 좀 비쌌는데 일정부분 안전을 보장하면서 그렇게 비싸지 않은 방식을 찾아낸 것 같다.
■전기 외에 온돌 같은 다른 방식의 단열방식이 있나?
□예전에는 오븐이 있어서 열을 담아두는 역할을 했는데, 현대식 건물은 이런 식이 어렵다. 바닥을 데우는 방식이 있는데, 이는 매우 고급스러운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유리로 된 베란다로 햇빛 들어오게 하는 등의 방식도 있다.
■투자자 한 명당 최소 투자액, 최대 투자액은?
□ 1주당 500유로, 최대 10만유로 , 아직 아무도 거기까지 도달한 사람은 없다.
아무래도 민주적이지 않을가 해서 최대 투자액을 10만유로로 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발전차액지원금이 설치장소에 제한이 없어서 녹지훼손이 많았다. 규모가 대형화, 상업화되었다. 독일은 어떤가?
□벽면, 지붕, 나대지 별로 가격이 있다. 21센트에서 28센트 사이이다. 지붕은 26센트이다. 녹지훼손은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있다.
■태양광 발전소 만들 때 무엇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나?
□지붕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왜냐 하면 지붕이 단단해야 하고 무게감이 있어서 견뎌야 한다. 적절한 루프 찾는 게 힘들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지만, 아직은 소수다. 특히 이들이 에너지나 환경문제에 관심있고 투자금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이들을 찾는 게 쉽지 않다. 6.8매
소피헤겔 시민운동가
“누구라도 전기를 생산하면 송전망 운영자가 반드시 사주도록 법으로 강제”
독일은 에너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많지만, '재생가능에너지법'이 있어서 운이 좋은 편이다. 누구라도 원하거나 자격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송전망 운영자가 반드시 사주도록 법으로 강제돼 있어서 그런 시스템 작동한다.
이 분야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 이들을 모아서, 전력 생산해서 팔고, 수익을 남길 수 있다. 이는 생태적인 투자이다.
2000년부터 재생가능에너지법이 시행되면서 지금까지 11년동안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것 자체가 예측가능성 갖고 일을 할 수 있어서 이런 일을 하는데 기초가 될 수 있다. 사람을 모아서 에너지 생산,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오랜 기간 걸리기 때문에 오랜 기간 지속된 법이 매우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이지역의 태양광발전은 2006년부터 시작. 처음에는 간단한 형태의 조직으로 일을 시작(유한회사) 문제가 되면 개인의 재산을 차압당하는 형태의 회사형태였다. 사람들이 투자를 꺼려했다.
두번째에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했다. 민주적인 방식인데, 예전에는 투자한 액수만큼 표를 행사했는데, 지금은 모든 사람이 1표씩. 책임은 5000유로만 책임지면 되니까(자기가 투자한 만큼만 책임지면 된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없애는데 도움을 줬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하면서 시를 설득해서 시 소유의 학교 시설물에 30년 동안 사용할 권리를 허락받아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학교가 오래돼서 보수공사가 필요했다. 국가소유의 지붕을 임대비를 내야하는데, 지붕공사비를 낸 것이다. 보통 지붕에 올릴 수 없다. 지붕이 약하기 때문에 손질해야 한다. 일반가정의 태양광들은 자신들이 지붕을 개보수하면서 태양광을 올렸다.
재생가능에너지 방식으로 생산한 전기를 보내야하는데 송전망 연결하는데 비용이 든다. 발전사업자들이 송전 비용을 줘야 한다. 5천유로 정도를 들여서 연결을 했다. 일부의 사람들이 직접 일을 했다.
이후 송전망 설치를 할 때는 계약 회사를 고용해서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280만 유로가 들었다. 수익은 3-4%(연 수익) 정도였다. 은행에 돈을 맡겼을 때 얻는 이자보다 너무 많아도 안 된다. 이 법이 좋은 법이지만 사람들에게 비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소비자 가격보다 더 주고 전기를 사는 것이니까. 추가된 비용에 대한 지불(3센트가 보조금이기 때문에.) 투자할 능력, 지불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한테 투자를 보장해주면, 나는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적정한 정도의 이익을 얻는다.
정부가 가격을 결정해서 전기를 사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발전단가가 기술개발 등으로 인한 설치비용의 하락으로 생산단가가 계속 줄어들면서 정부 매입 가격이 쑥 떨어졌다. 정부에서는 가격 재조정을 항상 한다. 가격 재조정이 예전에는 2년에 1번, 최근에는 1년에 1번씩 한다. 재조정이 이뤄지기 전에 이미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긴다.
독일에서 태양광 설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조정이 이뤄지는 속도가 가격보다 더뎌서 그때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 진짜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7.9매
보봉지역
에너지 재활용의 선구자 역할로 잘 알려진 보봉 지역을 방문해 알무트 슈스터로부터 보봉지역의 최근역사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알무트 슈스터
“이곳에는 에너지 주거단지가 3종류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1952년부터 59년까지 프랑스군대가 이곳을 점령해서 지명이 프랑스식 보봉이다. 프랑스 군대가 물러간 이후에 독일인들에게 좋은 기회로 판단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었다.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이 도시를 어떻게 형성할지 오랜 시간동안 논의해왔다. 시에서 주축이 되어서 한 게 아니라 수많은 전문분야의 시민단체(교통, 도시계획)가 모여서 논의를 했다. 토지소유는 원래 프라이부르크 시 소유인데, 조금씩 팔려나갔다. 중심지역으로는 이 식당이 프랑스군대가 점령한 막사(철거하지 않고 식당으로 개조, 나치군대의 카지노장이었다) 시민참여의 대표적 건물인데. 이것이 점차 나눠지면서 수많은 가게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살았다. 마을도 마찬가지다.
앞에 4개의 군대가 점령했던 지역도 있었다. ‘스지(SUSI INDEPENT SELF ORGANIZE)’라는 시민단체가 이를 어떻게 쓸지 계속 싸워왔다. 그 건물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싸지 않게(시민단체가 개입해서) 임대했다. 다른 건물은 학생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의 에너지 주거단지는 3군데가 있다. 1)자급자족 2)그 이상 생산해 판매하는 곳 3)겨울에 난방없이 운영되는 집이다.
△플러스 에너지하우스. 일반적인 가정에서 1년에 1만1000KWh를 소비하는데, 이곳에서는 1500KWh만 소비하면 된다.
△자동차 자유지역에서 사는 주민들은 ‘Car free association'에 가입해서 차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계약해야 한다. 대신, 20여 대로 카 셰어링 시스템을 이용한다.
이 외에 차를 소유한 주민은 주차장 2곳에 차를 주차하고, 주차비를 낸다.(대형 주차장 2곳.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자동차를 탈 때를 대비해 제3의 주차장 장소를 마련해두고 있음)
마치면서
독일견학에서의 반핵운동과 그리고 반핵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대안 에너지체계로의 전환, 핵발전소의 안전성확보, 탈핵을 이루었던 독일국민들의 저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대항전문가들의 노력은 반핵운동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독일탈핵교수모임 견학단 일행은 이후 제2, 제3의 견학단을 모집하여 독일견학과 모임등을 통하여 대항전문가 그룹을 만들어 각 지역에서 반핵, 탈핵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단체들에 기술상의 전문적인 영역과 사회과학적인 접근들을 연구 제공하는 일들을 하여 우리나라도 탈핵으로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