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규/ 영광효사랑노인복지센터장

살아가다보면 한번쯤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로 기억된다. 평소보다 일찍 학교가 끝나 자기 집에서 놀고 가자는 친구의 말에 부모님이 일터에 가신 텅 빈 집에 혼자 있기 싫었던 나는 친구와 함께 큰 도로를 따라 가고 있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친구와 나는 서로 밀거나 때리는 장난을 하면서 쫒아오는 친구를 피해 큰 길을 가로 질러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찰라, 누군가 뒤에서 “최윤규!!”하고 부르는 소리에 그 자리에 멈췄다. 순간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간발의 차이로 내 앞을 쏜살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친구에게 “나를 불러줘서 고맙다”고 하자 “무슨 소리냐며 나는 부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며 생명을 건진 기적 같은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곤 한다.

2000년 7월에 고향인 영광에 내려와 ‘난원’에서 지역민과 함께 노인복지에 몸담아오며 내 주변에서도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지난 2010년 10월에 법성면에 개원한 우리 시설에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같이 남편을 찾아오시는 할머님이 계신다. 남편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서 인데, 할머니께서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셨을 때 남편인 할아버지께서 지극정성으로 할머니를 수발을 해주시어 어느 정도 외출이 가능한 정도까지 회복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와 함께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심을 잃고 쓰러지시는 할머니를 보호하시려다 크게 다치셔서 병원에서 장기간 치료를 받으셨으나 재활이 되지 않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셨다.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를 집에서 모시고 싶었으나 자신 몸도 불편하고 자녀들은 생업에 종사하여야 하므로 장기간 수발을 하기 어려워 가족과 상의하여 우리 시설로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다치시게 된 것이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시며 죄스러운 마음에 거의 매일 시설을 오시며, 오실 때마다 눈물을 안보이실 날이 없을 정도로 우시고 또 우신다.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직원들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다행히도 할아버지께서는 재활에 대한 의지가 남달라 간호사, 물리치료사, 요양보호사의 지시에 따라 재활운동을 꾸준히 하셔서 할머니에게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주시려 노력하셨다. 이제 할머니께서는 힘겹지만 보행기에 의지하셔서 걸을 실 수 있게 되신 할아버지를 보면서 죄스러운 마음을 떨쳐내시듯 기쁨의 눈물을 흘리신다. 지금도 할머니께서는 종전과 다름없이 거의 매일 남편을 보러 오시지만 우시지 않고 한층 밝아진 웃는 모습으로 직원들을 대하신다. 아마도 할머니께서 경험하신 것은 다시는 걷지 못할 것만 같던 할아버지께서 걷게 되신 “작은 기적”이였을 것이다. 더불어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 되셨을 것이다. 이런 희망이 이 노부부에게 일어나고 있는 기적들이며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이라 느껴진다.

가끔 어르신들께 “가장 큰 소원이 무언가요?”하고 여쭤보면, 먹고 싶은 음식이나 갖고 싶은 물건 또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소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자는 듯이 죽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자식이나 주변에 짐이 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씀이실 것이다. 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찌 사람의 뜻대로 되겠는가!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신 분들에게 “복 받은 사람이다”, “생전에 좋은 일 많이 했나 보다”라고 말을 할 정도다.

노인이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노화와 더불어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이 점차 쇠퇴하여 생활기능 수행상의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즉, 노인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갈수도 피할 수도 없이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삶의 단계로서, 무엇보다도 생활기능 수행상의 장애를 늦출 수 있도록 먼저 노인 스스로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생활기능상의 장애가 발생할 경우 1차적으로는 가족이, 2차적으로는 지역사회 또는 전체사회가 담당해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광군 대부분 마을의 80~90%가 노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노인인구 비율이 증가하고 있고 이중 노부부세대와 노인독거세대가 차지하는 비율 또한 증가하고 있으며 노인들의 질병치료 및 보건·의료문제, 노인수발문제, 경제문제, 여가문제 등 여러 분야의 문제도 빠른 속도로 가시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의 문제는 가족의 책임으로만 둘 수 없는 지역사회가 풀어가야 하는 과제이다.

노인 문제의 책임에 대한 공방이 노인 자신과 가족 및 지역사회를 오가는 동안 당사자인 노인들은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편안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67개 보건·복지 국고보조사업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됨과 동시에 노인복지사업도 지방자치단체로 함께 이양되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국가가 지역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지원되는 노인복지서비스에서 벗어나 지역 노인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노인 당사자를 포함한 노인복지 관계자들에 의한, 지역여건이 반영된 현실성 있는 노인복지플랜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인적·물적 자원이 열악한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인 영광군 어르신들에게 “희망”이라는 “기적”들을 만들기 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지역의 실정에 맞는 중·장기적인 노인복지계획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예산 또한 꼼꼼히 따져 단계적으로 수립해봐야 할 때이다. 더불어 시범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지역 노인복지서비스에 작은 실패들도 큰 성공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역사회의 지지와 기다림의 미덕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인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자립생활이 어려워지기 전에 예방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노인복지서비스는 신체적·정신적 자립이 어려운 노인의 보호와 함께 시급히 다루어 져야 한다.

다가오는 10월 2일 “제15회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어르신과 함께 “기적”을 만들어 가시는 분들의 소중함을 마음에 세기며, 이 지역의 어르신들이 지역 속에서 편안한 삶을 영위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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