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안철수에게 한방 먹은 정치권이 분주하지만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를 고민하기 보다는 자기 살길만 찾아 헤매는 싸움터로 변한 모습이다. 정치인들의 기억력이 붕어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길 바란다”

사람들은 붕어가 3초 박에 기억하지 못한다고들 말한다. 이 말을 붕어가 듣는다면 “듣는 붕어 기분 나쁘다”며 강력히 항의할 게 분명하다. 실제로는 1주일에서 6개월까지 기억한다고 한다. 낚시꾼들이 붕어와의 승부에 재미를 느끼는 것도 붕어의 머리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낚시만 넣으면 덥석덥석 문다면 무슨 재미로 낚시를 하겠는가. 제법 영리한 붕어들은 낚시에 미끼를 매단 채 시간을 죽이고 있는 ‘꾼’들을 비웃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문난 낚시터에 다녀온 ‘꾼’들의 성적표가 초라한 경우가 많은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인간의 기억력은 뛰어나다. 가히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을 지켜보면 인간의 기억력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안철수 교수에게 한방 먹었을 때는 “국민의 뜻” 운운 하면서 변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금방 언제 그랬느냐는 듯 구태를 재연하고 있다. 국민을 의식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하는 짓을 보면 모두들 제 살길 찾기에 바쁘다.

모든 정파, 모든 정치들이 분주하지만 정치를 바꾸겠다는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류 정치로 가고자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싸움터의 모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당 대표가 내놓은 ‘쇄신안’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토론하는 과정도 없이 즉각적인 반발만 무성하다. 정몽준 의원의 내년 총선 대폭 물갈이 주장에 박근혜 의원은 즉각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렸다. 남경필·원희룡·정두언 의원 등도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철수 태풍’으로 집권 가능성을 높인 야권도 싸움으로 변해버린 것은 마찬가지다. 판을 좌지우지 하던 ‘대주주’ 가 사라진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의 야권 통합 전당대회 제안이 나오자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비판과 고성이 오가고 있다. 문재인 등 ‘통합과 혁신’이 환영하는 손 대표의 제안에 정동영·정세균 의원은 찬성이고 박지원·김부겸 의원 등은 반대와 비판의 핏대를 세우고 있다. 야권을 통합해 대선을 성공으로 이끌자는 대선 주자들과 당권이 목표인 박·김 의원측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판이 변화 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 하다. 반대와 비판이 무성한 것도 자연스럽고 필요 하다. 중요한 것은 개인과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진지하게 논의 하는 모습이다. 각자의 이해와 생존을 위한 투쟁이어서는 안 된다. 당과 개인을 염두에 둔 말과 움직임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염두에 둔 정당이며 정치인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음 달이면 총선과 대선에 뛸 정치인들이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선거 운동에 나선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만큼 여야 정치인들의 생존을 건 싸움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다. 경제가 절대적 가치인 시대에 관심은 온통 정치에 쏠리는 시기다.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정치에 함몰돼 있다가는 자칫 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다.

정치권, 특히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총선과 대선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정치판에서 살아남기에만 집중하다가는 모두 잃게 된다. 나라와 개인의 살림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겉모습만 화려한 정치‘쇼’는 흥행에 실패한다. 민주당 등 야권도 마찬가지다. 나라살림을 맡길 만 하다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안철수가 높여준 집권 가능성도 총선에서의 승리도 물건너 간다. 현재의 정치 지도를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녀시대나 샤이니가 일군 ‘한류’의 성공이 정치권의 ‘롤 모델일 수도 있다. 정치인들의 기억력이 붕어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지는 않길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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