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운동의 역사 영광에서 찾는다”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 위한 공동행동이 주최하고 원불교대책위원회가 주관하는 ‘2011 영광 탈핵학교’가 지난 13일 제1회 교실을 개최했다.
“탈핵-대안에너지-대안사회”를 주제로 열리는 탈핵학교는 제1회 “우리는 보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에 이어 제2회 차 10월 20일에 ”안전한 방사능은 없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교수)“가 열렸다. 제3회 차는 11월 10일 “탈핵운동의 역사 영광에서 찾는다(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제4회 차는 11월 24일 “탈핵! 한국의 시나리오(하승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장)”의 강연이 이어진다.
영광신문은 ‘2011 영광 탈핵학교’의 강연 내용을 4회에 걸쳐 요약 게재해 대안에너지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을 모으고자 한다. <편집자 주.>
반핵운동의 역사와 한계

한국에서 처음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된 곳은 전남 영광이었다. 1987년, 원전 인근 주민들이 원전가동에 따른 어업피해를 보상받고자 운동을 일으켰다. 원전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로 인해 급격한 어업 피해가 발생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어서 88년과 89년 사이 고리와 영광 원전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방사능에 피폭되어 암으로 사망하거나 기형아를 출산하는 등의 사고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본격적인 반핵운동은 1989년 4월, 환경보건의료단체와 지역주민대책위가 연대하여 결성한 ‘전국핵발전소추방운동본부’와 ‘핵발전소 11,12호기 건설반대 100만인 서명운동본부’결성에서 시작되었다. 경북 영덕(1989,3)에서 시작된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이러한 연대기구와 함께 충남 안면도(1990, 11), 강원 고성(1991, 7), 강원 고성․양양, 경북 울진․영일, 전남 장흥 등 6개 후보지역(1991, 12), 굴업도(1994, 12), 전북 부안 위도(2003, 7)등에서 치열하게 펼쳐졌다.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신규원전 건설 반대운동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정부가 1991년 6월, 전남 6개 지역과 강원 삼척, 경북 울진 등 전국 9개 지역을 신규후보지로 발표한 이후 이들 지역은 오랜 기간 원전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반핵운동을 거치면서 정부와 원전산업계는 핵폐기장과 신규원전 추진 방식을 전환해가기 시작했다. 핵폐기장 부지 선정 계획이 부안에서도 성공하지 못하자 2005년, 주민투표법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지역지원금 지원과 주민투표를 통해 핵폐기장 후보지를 결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경주․영덕․포항․군산 등 4개 지역 지자체장 신청을 받아 주민투표에 붙였다. ‘3천억원 + 알파’라는 경제적 유인책을 통한 방폐장 부지 선정은 지역간 경쟁을 통해 경주로 확정되었다. 비록 금품 향응 제공 등 부정선거가 횡행했지만, 경주 방폐장 부지 확정은 절차적으로는 주민 찬성 속에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쟁에서 탈락한 지역에서 반핵운동을 벌인 주민들은 지역사회에서 비난을 받는 등 고통을 겪게 되었다. 환경단체도 주민투표 방식을 통한 핵시설 유치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활동의 무력함을 드러냈으며 이는 추후의 반핵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지역주민들의 운동과 함께 성장한 반핵운동이 그 주축이 무너지면서 극명한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신규원전 건설반대운동도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의 반핵운동은 고리· 월성 · 울진 · 영광 등 기존 원전 부지 외의 새로운 부지에 세워지려는 원전 건설계획을 막아냈다. 반발이 심한 신규 지역에 원전 건설이 어려워지자 정부와 원전업계는 1998년 12월 전국 9곳 신규원전 후보 부지를 백지화했다. 대신 기존 원전부지 바로 옆에 신규 후보지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원전 확대사업을 추진해왔다. 새로운 지역에 원전건설을 추진할수록 주민반발과 반핵 여론만 조성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기존 원전 옆에 추가건설을 하는 일은 큰 저항 없이 추진될 수 있었다. 가장 쉽게 원전 증설이 가능한 곳이 바로 원전이 가동되는 지역인 것이다. 기존 부지 옆에 신규 후보지 터를 확대하는 것은 이미 닦아놓은 도로를 약간 넓히기만 하면 되는 일과 같다. 원전 가동지역 주민들은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가동되고 있는 원전을 끄거나 중단시킬 수 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6-7년의 원전건설 기간 동안 형성되는 건설 경기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원전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건설경기가 잠시 부양되는 기억을 잊지 못하는 마약효과에 빠지는 것이다.
핵시설의 경우 안전성 확보가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원전업계는 안전성보다 사업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에 따라 원전증설을 해왔다. 방폐장 부지 선정도 마찬가지이다. 부지 선정과정에서 안전성 문제는 뒷전으로 미루고 지역경제 부흥과 주민투표라는 방식을 취해 부지확보에 나섰다. 20여 년 간의 방폐장 부지확보 실패를 통해 얻은 학습효과는 주민투표라는 형식적 민주절차의 과정을 도입했다. 지역지원금과 한수원 본사 이전, 양성자 가속기에 ‘카더라’ 통신을 통한 수 조원의 지원책이 난무하면서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킨 유치경쟁을 부추겼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주에서 방폐장 부지확보에 성공했다. 주민들의 찬성 속에 추진된 경주 방폐장 사업은 이후 반핵운동에 많은 퍠배감을 안겨주었다. 한국의 반핵운동에서 큰 분기점이 되었던 시기가 바로 2005년 경주 방폐장 지정 이전과 이후이다. 그리고 이제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원전 산업계의 원전 확대 전략
국내 원전산업계와 정부는 1990년대 초기 폭발적인 반핵운동을 경험하면서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물량공세와 대시민 홍보에 집중해왔다. 지난 92년 원자력문화재단을 만들어 원자력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한 대대적인 홍보사업을 벌여왔다. 아울러 지역 발전 지원금의 액수를 계속 높여가면서 방폐장 지정 계획을 추진했다. 결국 이 두 가지 목표는 200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적 유인 효과를 내세운 방폐장 선정계획도 성공적으로 되었고, 원전 확대 정책은 차질없이 추진되었다. 일반 시민들의 원전에 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많이 변화되었다. 지난 20여 년 간 원자력문화재단은 국민들이 내는 전기요금 3.7%로 적립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부터 매년 100억원씩을 받아서 초·중·고 교과서 개정, 언론인과 여론주도층을 대상으로 한 해외시찰, 드라마나 과학프로그램을 통한 간접 광고 등 전방위적으로 원전 홍보 사업을 벌여왔다. 게다가 원자력문화재단과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엄청난 광고 공세를 통해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보도되지 않도록 언론 방송을 길들여왔다. 이들의 목표는 시민들이 원전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환경단체들을 대안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하는 집단으로 이미지 작업화하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을 통해 대대적으로 전개한 원전 홍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긍정적 생각과 더불어 경주 방폐장 부지 선정 이후 지역주민들마저도 핵시설을 선호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원전 산업계는 거침없이 원전 확대 정책을 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지난 해에는 한수원이 동해안의 삼척과 영덕, 전남 고흥과 해남 지역을 대상으로 신규원전 후보지 지정에 나섰다. 고흥과 해남지역은 후보지 선정 발표가 나오자마자 반대대책위가 만들어져서 유치 신청이 무산되었다. 그러나 동해안 지역에서는 오히려 울진까지 가세해서 원전 유치 신청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지역들의 경우 과거 핵폐기장 반대운동(영덕), 핵폐기장과 신규원전 반대운동(울진과 삼척)을 강력하게 전개했던 곳이다. 하여 이들 지역의 유치운동은 그야말로 원자력 르네상스가 성공적으로 부활되었음을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시민사회의 과제와 역할
2005년 경주 방폐장 부지 선정 이후 반핵운동은 급격히 사그라드는 대신 원자력산업은 시민들과 지역주민들의 지지와 협력 속에 부흥기를 맞이했다. 가동 중인 21기 원전 외에 7기 추가건설, 6기 건설계획이 확정되었다. 이에 더해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을 통해 2030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중을 59%로 높이겠다는 계획이 흔들림없이 추진되고 있다. 원자력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원자력사회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멀어진다. 가채연한이 60-70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제한된 자원인 우라늄에 의존한 원전 건설에 올인하면 할수록 에너지 파국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40기에 가까운 원자력발전소를 안고 살면서 여기서 발생하는 핵폐기물과 함께 고도의 위험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후쿠시마에서도 드러났지만 원자력은 인간의 힘으로 끌 수 없는 불이다. 심지어 사용후 핵연료조차도 적어도 30년에서 50년 동안 냉각수조에 저장해서 관리해야할 만큼 타고남은 연료도 엄청난 열을 뿜어내는 물질이다. 최소한 10만년 이상 인간과 생태계로부터 격리해야할 사용 후 핵연료는 미래세대에게 고스란히 부담을 넘겨주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정부가 곧바로 노후한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가동 연장 계획을 폐기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시민들의 반핵운동과 녹색당, 에너지대안 시나리오 등 탈원전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합의와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반핵운동이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 기반이 없었기에 지역주민들이 찬성으로 입장으로 돌아서면 바로 반핵운동의 힘이 쇠잔해졌다. 향후 국내의 문제를 상기해 볼 때 노후원전 수명연장 등 가동 중인 원전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다. 원전관련 지역주민들은 한수원 등이 보상이나 지원금 등의 당근을 내밀면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노후원전을 중단하고 원전 확대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들 참여가 필수적이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이 원전 문제는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확대해나가는 게 필수적이다. 기존 부지에 원전 건설을 증설하는 문제도 똑같은 이치이다. 신규원전부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주민들이 찬성하고 나서면 추진되는 식의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원전 확대 정책을 막아내기 어렵다. 내년 총선과 대선 때 탈원전 공약을 내거는 후보나 당을 지지하는 일은 원전 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가 원자력대국으로 가느냐 이 시점에서 에너지 전환점을 마련하느냐는 전적으로 시민사회의 역할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의 반핵운동은 그동안 원전르네상스 정책에 방조자 혹은 구경꾼으로 있었던 시민들을 광범위한 지지계층으로 묶어낼 수 있는 대중적 활동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도 더 이상 원전이나 핵폐기장 문제를 환경단체와 일부 지역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위험한 원전과 미래세대에게 물려 줄 핵폐기물 문제를 외면한다면 후쿠시마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재일교포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대표는 후쿠시마 사고이후 그동안 원전에 찬성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원전은 필요없다며 개인 돈 130억원을 희사해 자연에너지재단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후쿠시마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분명하다. 원전은 본질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재앙적 경고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체르노빌 사고를 통해 탈원전 사회를 준비해왔다. 유럽에서도 체르노빌 이후 보수적 인사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그간의 원전 찬성에 대한 반성을 하며 탈원전 사회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탈원전 사회를 준비하는 큰 힘이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는 이제 우리가 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