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언론인, 프리랜서

“돈·쌀·일손·이불·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등 따숩고 배부른 집’을 마련하고 싶다.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응징 대신 굶주리는 북녘 동포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 정권이 밉다. 남쪽만이라도 등 따숩고 배부르게 만드는 기부 바이러스가 온 나라에 퍼지길 빈다”

나에겐 소박한, 아니 거창한 꿈이 있다. 내 고향을 춥고 배고픈 사람이 없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다. 돈 버는 재주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재에 돈을 많이 벌어 나부터 운영비를 기부 하고 고향 사람의 뜻을 모아 춥고 배고픈 사람이 없는 고향으로 만들고 싶다. 무슨 복지 재단을 만들어 국가나 자치 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 고향 사람들 끼리 뜻을 모아 ‘등 따숩고 배부른 집’을 마련하고 싶은 것이다.

내 재주로는 꿈에서나 가능할, 이 같은 상상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겨울을 실감케 하는 추위가 밀려오자 ‘등 따숩고 배부른 집’에 대한 상념에 젖는 시간이 많아진다.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뿌듯하다. 광주에 사는 김 회장님이나 이 회장님, 서울에 사는 선후배 변호사와 의사, 사업가 등 기꺼이 기부해 주실 것으로 믿는 분들의 성함을 떠올린다.

우리끼리 돈도, 쌀도, 일손도, 이불도, 따뜻한 마음도 나누며 즐기는 상념 속에 북한 동포들의 현실이 파고든다. 즐거움이 근심으로, 따뜻했던 가슴이 얼음장으로 변한다. 평화 발전에 이바지한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주는 ‘제1회 글로벌 피스 어워드’를 20여 년간 북한을 오가며 식량을 지원 해온 법타 스님이 수상 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이 스님에게 상을 주는데 왜 우리 정부는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조차도 막고 있단 말인가?

법타 스님은 수상 소감을 “밥이 평화”라고 밝혔다. 그리고 최근 급속히 경색된 남북관계 때문에 지원이 막힌 상황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3년 전부터 밀가루 지원 길이 막혀 국수 공장이 녹슬고 있다. 흔히 ‘인도주의 차원’ 이라고 하는데 실은 그보다 앞서고 근본적인 ‘생명존엄’ 정신으로 동포에게 식량 지원을 해야 한다”면서다. 공감 한다. 머릿속은 쓸데없이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생각으로 까지 번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굶주린 북녘 동포들은 천안함을 피격 하지 않았다. 핵무기를 개발하지도 않았고 연평도에 포격도 하지 않았다. 더욱 청와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등 협박도 하지 않았다. 죄가 있으면 김정일 정권에게 있다. 헌데 이 정권은 김정일 정권을 응징하는 대신 굶주린 동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법타 스님이 아닌 내 분통이 터진다. 대북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지원을 하던 시절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현 정권이 밉다.

서러움 중에 가장 큰 서러움은 배고픈 서러움이라고 했다. 우리는 음식물 처리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북녘 동포들의 배고픈 서러움을 외면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는 현실이다. 남북관계가 경색될수록 통일은 멀어진다. 너희들은 음식이 남아 버리면서 굶주리는 우리를 모른 체하느냐는 동포들의 원망은 자칫 분단을 기정사실화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북측의 ‘술수’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더 앞서는 ‘술수’를 쓰면 될 것 아닌가. 그래도 안 되면 ‘꼼수’라도 써야지.

남쪽 대한민국도 배부르고 등 따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쪽은 정치에 맡기고 남쪽만이라도 배부르고 등 따숩게 만들어 보자. 작년에는 ‘사랑의 열매’가 흉년을 면치 못했다. 다행히 올해는 평년작은 된단다. 다행이다. 기부천사들의 기부 의지가 되살아났다는 증거다. 추위가 오기 직전 안철수 교수가 뿌린 ‘기부 바이러스’가 온 나라에 퍼지길 빈다.

내 비록 이루지 못할지라도 ‘등 따숩고 배부른’ 내 고향을 만들겠다는 꿈만은 소중 간직하고 키워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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