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 영광신문 편집위원

요새 내 공부 과제는 온통 농도(農都)복합공동체다. 이를 위해 시간만 나면 농업농촌정책 세미나, 풀뿌리공동체 모임, 협동조합, 두레 모임 등 이른바 사회경제네트워크에 참여해 공부하면서 의견을 구하곤 한다. 자치단체마다 도시생태농업이나 귀농 관련 지원조례를 만들어 공포하고 있지만, 농촌과 농부가 살 길은 기대만큼 그리 탐탁지 않아 보이는 탓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소농(小農) 중심의 농촌마을이 생존할 수 있고, 더불어 농촌과 도시가 공존할 수 있을지, 그 가운데서 여민동락공동체는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지 궁리하느라 마음이 바쁘다.

알다시피 농촌문제의 근본에는 8%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우리 농민 인구의 급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마저 농촌 고령화 인구가 50%를 넘어서고 있으니, 농촌의 공동화를 대비한 귀농귀촌의 활성화까지 포함해 농업농촌을 위한 다양한 대안이 고루 갖춰져야 할 일이다. 또한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겨우 27%이며 쌀을 제외하면 5%에 불과하다. 쌀 다음으로 국민의 주식이 되어버린 밀은 자급률이 고작 1%를 겉돌 뿐이다. 곡물은 얼마든지 수입해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농업과 농촌을 증발시켜버린다면 식량안보는 물론, 식품의 안전성마저 보장받을 수 없게 되는 파탄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 암울하다. 더구나 한미 FTA 비준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실낱같은 가능성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의 나락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이 이렇다고 속수무책일 순 없다. 정치를 바꾸든 농민파업을 하든 정책과 제도에 대한 저항은 저항대로 하되, 스스로 살 길을 찾는 것도 고스란히 농업과 농촌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래서다. 요새 더욱 절실해진 게 농도공동체 운동이다. 구체적으로는 십시일농(十市一農)이다. 도시의 열 가구와 농촌의 한 가구가 한 식구로 맺어지고 연대하자는 뜻이다. 쉽게 말해 생산농가 한 가구가 도시민 열 가구에 생산물을 공급하는 의미다. 농업 또한 시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체제이고, 공동체 법칙보다 정글의 법칙이 우선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소농들로서는 별달리 판로를 개척할 방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과 도시가 상호 신뢰할 수 있는 회원제 계약재배 형태가 활성화돼야 하며, 현재 생활협동조합의 운영방식을 점차 확대시켜야 한다.

십시일농을 마을 단위로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민동락공동체는 올 해부터 농민들의 생산물과 도시민들을 연결하는 장터역할을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가능성이 보인다. 친환경 쌀은 물론 현미, 콩, 고춧가루, 김장김치, 묵은지까지 주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양과 관계없이 주문을 받아 농민과 도시민을 잇고 있다. 내년부터는 채소, 메주, 된장, 단감, 고구마, 감자, 참깨 등은 물론 지역의 생산실태를 조사해서 모든 농산물을 십시일농의 철학으로 각 농가와 도시민을 맺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심지어 갓김치, 파김치, 장아찌 등을 농민들이 직접 담게 하거나 마을기업과 사회적기업 등의 제품을 구해 판매를 대행하는 협동조합까지도 구상하고 있다. 여민동락처럼 면단위에서 허브역할을 하는 작은 거점만 있다 해도, 생산자 협동조합 형태로 도시와 연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도시민들의 밥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농산물의 수입이 늘다보니 저질의 중국산을 비롯해 광우병 의심이 가는 미국 소고기에서부터 유전자 조작한 식품까지 우리 밥상을 위협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아가 살림을 위해 일자리가 필요한 귀농 귀촌인의 안전한 농촌 정착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대비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십시일농은 농도상생의 농업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성원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도록 만드는 소중한 과정인 것이다.

독일은 농업을 국가 자존산업으로 정하고 있으며, 스위스 역시 농민을 국토관리인의 개념으로 예우하고 ha당 일정한 지원금을 주면서 육성하고 있다. 농업을 농민의 직업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기본산업으로 봐야만 국가의 근본을 세울 수 있다는 각성의 발로다. 그렇다. 농업농촌이 국가의 심장이다. 그리고 농업농촌 활성화의 작은 길에 농도복합공동체가 있다. 공동체만이 국가와 시장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십시일농의 연대를 통한 농도공동체, 그 길 위에 농촌과 도시의 공존과 협동의 해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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